출판사 리뷰
군중의 힘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오늘날은 군중의 시대다! 군중은 역사적으로 어느 시대나 존재했다. 물론 근대 이전에도 군중은 존재했으나 대체로 산발적이고 개별적이며 어느 한 부류에 한정되어 사회 전체나 역사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 군중은 곳곳에서 불현듯 출현하고 계층, 신분, 계급, 출신을 불문하고 누구나 군중에 가담하는 등 모두가 잠재적 군중일 만큼 군중은 일상적인 존재가 되었고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 또한 지대하다. 그러므로 르 봉이 말하는 ‘심리적 군중’은 근대 또는 현대의 산물이다.
그런데 군중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비이성적인 힘의 지배를 받는다. 따라서 군중의 시대엔 대중의 격정과 원동력을 끌어내는 카리스카를 갖춘 지도자가 필요하고 군중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정치를 하든 사업을 하든 그 무엇을 하든 성공하려면 군중의 심리를 잘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렇게 보면 『군중심리』가 출간된 지 130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군중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르 봉의 탁월한 혜안 때문이기도 하다.
군중심리를 연구하게 된 계기1870년 보불전쟁에 군의관으로 활동했던 르 봉은 참혹한 전투 속에 고통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병사들의 모습을 보고 인생관, 세계관, 학문관의 전환점이 되었다. 또한 프로이센 군대가 코앞에 다가오고 곳곳에서 프랑스 군대가 패배하며 마침내 파리가 포위되자 프랑스 국민은 그야말로 패닉상태에 빠졌고, 사소한 허위 정보에도 믿고 따르는 군중의 모습을 본 것이다. (이 전쟁에서 패한 프랑스는 루이 보나파르트가 실각하고 제2 제국이 몰락하고 제3공화정이 수립됨)
더 결정적 계기는 1871년 파리코뮌이었다. 전쟁에서 참패한 프랑스는 프로이센과 강화 조약을 맺으려는 순간 어수선한 틈을 타 왕당파가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왕정복고를 시도하자 이에 분노한 파리 시민이 봉기를 일으켜 자치 정부를 수립하고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제 도입, 여성 참정권 등 혁신적인 정책을 내세웠다. 하지만 정부군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70일 만에 막을 내렸다. 그 와중에 수만 명의 노동자,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이러한 참상을 직접 목도한 르 봉은 군중심리 연구에 몰두하며 사회심리학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시기는 마르크스주의, 폴 라파르그와 장 조레스의 사회주의, 프루동을 계승한 무정부주의, 조르주 소렐의 혁명적 생디칼리즘 등 온갖 사상이 난무하고, 1895년(르 봉의『군중심리』가 출간된 해)은 프랑스노동총동맹이 결성되는 등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또한 사상적으로는 에밀 뒤르켕의 사회구조주의가 사상계와 학계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군중심리의 특징1. 군중은 단순히 개인의 합(合)이 아니다. 군중을 형성하면 모여든 개인들의 특성과는 무관한 심리적 특성이 나타난다. 동일한 상황에서는 물장수 백 명이든 대학교수 백 명이든 같은 심리적 특성을 보인다. 이렇게 심리적 군중을 형성하면 지성이나 이성이 마비되고 충동적으로 행동한다. 군중은 논리적으로 사고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사상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지 않고, 그냥 무조건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모조리 거부한다. 군중은 고지식해서 어떤 사상이든 쉽게 빠져든다. 그래서 어떤 사상을 군중에게 주입하는 것은 비교적 쉬우나 그들 머릿속에 한 번 주입되면 좀처럼 빼낼 수가 없다. 그들의 머릿속에 박힌 사상은 그들에게 절대적 진리나 다름없다.
2. 군중은 이성적 사고 능력이나 비판 정신이 부족하기 때문에 군중에게 어떤 이론이나 사상을 주입하려면 단순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이론이나 사상은 이리저리 뜯어고쳐 아주 단순한 형태로 제시해야 한다. 군중이 이해하기 쉽게 하려면 이미지로 제시해야 효과가 크다. 군중은 이미지로 생각하고 그 이미지를 군중 속으로 전달한다. 그러다 보면 나중의 이미지는 처음 이미지와 전혀 다른 형태를 띠기도 한다.
3. 그래서 군중에 영향을 주는 것은 실제 사실이 아니라 황당무계한 전설이다. 군중은 실제 사실보다 전설의 내용을 더 믿고 따른다. 전설은 가공의 산물이지만 군중은 그 내용이 실제인지 따지지도 않고 따질 능력도 없으며 그것이 실제 사실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전설의 내용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거나 전달하는 과정에서 과장되기 마련이다. 군중이 추앙하는 영웅도 실제 영웅이 아니라 전설 속의 영웅이다. 군중은 오히려 그런 과장된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선거 유세할 때 공약을 아무리 과장해도 군중은 그대로 믿는다.
4. 동물이든 인간이든 일정한 수의 무리를 형성하면 지도자를 선출하기 마련이다. 군중도 마찬가지다. 군중의 지도자는 처음에는 군중 가운데서 나오지만, 지도자로 선출되면 그 권위는 거의 절대적이다. 지도자가 군중을 거느리고 자신의 추종자로 만들려면 확언, 반복, 전염이라는 수단을 잘 활용해야 한다. 확언은 군더더기가 없이 단순하고 어떤 증거도 필요가 없는 언어를 말한다. 확언이 정립되면 반복해야 한다. 그래야 군중의 뇌리에 쉽게 파고든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군중 속으로 전염된다. 전염이 완료되면 군중은 무의식이 작동하고, 무소불위의 힘을 갖게 되고 어떤 일에도 거침없이 뛰어든다. 바스티유감옥 점령, 루이 16세 처단, 로베스피에르 단두대행 그리고 국민공회 의원 자신들 목숨을 바친 것 모두 군중의 무의식적 행동이 소산이다.
5. 이런 사례로 르 봉은 배심원단, 유권자 군중, 의원의 행동을 들어 예증한다. 배심원단은 르 봉이 말하는 이질적 군중의 대표적인 사례다. 배심원단도 충동적, 이성적 판단 능력 미흡, 감정적 등 군중의 일반적 특성을 그대로 표출한다. 그래서 배심원단은 지식인으로 구성하든 물장수로 구성하든 평결은 한결같으며 지도자의 영향을 받는다. 유권자 군중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후보자는 단순하고 과장된 공약을 거침없이 제시한다. 유권자는 그 공약을 그대로 믿는다. 의원도 일종의 군중이다. 의원은 지역구 유권자의 요구에 따라 움직이고,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에는 확고한 의견을 제시하나 그렇지 않은 일반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대체적인 경향을 그대로 따라간다.
군중심리의 영향과 악용사례1. 르 봉의 『군중심리』는 당시 비합리적이라 여기며 외면받던 인간의 정신구조, 즉 심리가 인간행동의 주요한 요소로 부각하는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대표적인 인물이 정신분석학을 학문적 반열에 올려놓은 프로이트다. 르 봉보다 15년 늦은 1856년에 태어난 프로이트는 르 봉의 집단심리학에 많은 영감을 얻었고, 무의식을 인간행동의 주요한 요소의 하나로 보며 정신분석학을 창시했다.
2. 인간행동의 기초를 이성이 아닌 감성이라고 주장한 빌프레도 파레토의 이론에도 르 봉의 『군중심리』는 많은 영향을 미쳤다.
3. 이렇게 르 봉의 『군중심리』는 학문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고, 사회심리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 심리를 인간행동의 주요 원리로 한 학문적 발달에 기여하였다.
4. 한편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경우도 있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등장한 파시즘과 나치즘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무솔리니와 히틀러는 군중심리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지도자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결과는 인류 최대의 참상을 안겼다.
르 봉의 연구 경향 파리코뮌이 진정된 후 르 봉은 인류학에 관심을 가져 파리 인류학회, 지리학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1879년 「뇌용량과 지능의 관계에 대한 해부학적·수학적 연구」를 발표하여 프랑스 과학아카데미로부터 상을 받기도 했다. 인류학에 관심을 가진 르 봉은 동유럽 일대와 아시아, 북아프리카 등지를 여행하며 각 지역의 민족적·인종적 특성을 연구하고 이것이 나중에 군중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에 접목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1881년에는 폴란드와 슬로바키아 지역을 다니며 『타트라산맥 여행기』를, 1884년에는 아시아 일대와 북아프리카를 탐방하여 『아랍 문명』을 남겼다. 1886년에는 프랑스인 최초로 네팔을 방문하고, 다음해 1887년에 『인도 문명』을, 1893년에 『인도의 기념물』 등을 펴냈다. 이 글들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각 지역의 문명과 민족의 특성을 기록한 탁월한 인류학 저작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들을 토대로 르 봉은 1894년 『민족 진화의 심리학적 법칙』을 발표하여 사회심리학의 초석을 다졌다.
르 봉은 과학에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르 봉은 1890년대 초부터 개인 실험실을 마련하고 과학 연구에 몰두하여 새로운 비가시광선을 발견하고 당시 유명 물리학자 앙리 푸앵카레 등과도 교류하며 과학철학 전집 편집 일을 맡기도 했다. 1903년에는 노벨 물리학상 후보로 지명되기도 했다고 한다. 1905년에는 『물질의 진화』, 1907년에는 『힘의 진화』 등을 발표했으며, 1922년에는 아인슈타인과 서신을 교환하는 등 과학에 조예가 상당히 깊었다.
1895년 『군중심리』 발표 후, 1986년 『사회주의 심리학』, 1902년에는 『교육 심리학』, 1910년 『정치와 사회 방어의 심리학』, 1912년 『프랑스혁명과 혁명의 심리학』을 발표하는 등 심리학 연구에 몰두했다. 르 봉은 어린 시절에는 왕정을 무너뜨린 2월 혁명, 젊은 시절에는 보불전쟁과 파리코뮌, 『군중심리』를 발표할 즈음에는 드레퓌스 사건 등을 겪었고, 노년기에 들어서 또 한 번 전쟁을 맞이했다. 바로 1914년 1차 대전이었는데, 전쟁 중에도 르 봉은 『유럽전쟁의 심리학적 교훈』(1915), 『전쟁의 심리학』(1916), 『전쟁의 주요 영향』(1916) 등을 저술하며 세계대전의 원인을 심리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을 이어갔다.
전쟁 후에도 『세계의 불균형』(1923), 『현시대의 불확실성』(1924), 『환상과 현실의 현대적 진화』(1927)를 저술하였으며, 1931년 12월 숨을 거두기 직전에도 『역사철학의 과학적 토대』를 발표하는 등 무수한 저작을 남겼다.
르 봉의『군중심리』가 남긴 유산르 봉은 근대사회를 ‘군중시대’로 특징짓고 군중을 부정적으로 파악했다. 그는 이성보다는 감정과 의지 및 민족적 요소의 영향력을 중시하고, 맹목적인 감정에 떠밀리는 군중의 행동을 지적, 도덕적으로 저열하게 보았다. 그러므로 군중을 멸시하는 듯한 내용 때문에 반민주주의적이고 히틀러나 무솔리니를 만들어낸 사상가로 비난을 받았다.
르 봉의 이런 군중관의 배경에는 19세기 사회적으로 대두하기 시작한 산업노동자 계급의 노동운동에 대해 귀족층이나 부르주아층이 느끼는 공포와 불신의 감정이 깔려 있다. 또한 19세기 말 격동기에 나타난 사회적 불안과 위기 상황이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르 봉이 도의적 군중 또는 영웅적 군중 등 군중의 긍정적 측면을 인정하고 있듯이, 군중행동은 사회적 모순과 갈등에 대해서 집단적인 항의와 저항으로 분출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으며 때문에 역사적으로 엄청난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따라서 현대 사회심리학에서는 흔히 사회변동기나 변혁기에 자연발생적으로 분출하는 군중 에너지가 창조적인 역할을 했던 점을 부정하거나 경시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곳곳에서 군중을 볼 수 있고 어쩌면 군중과 함께 살고있는 그야말로 군중의 시대다. 날마다 열리는 프로야구 등 스포츠 경기는 물론 각종 정치 집회나 시위 및 유명 축제 등 어떤 경우든 곳곳에서 대거 출몰하는 군중을 막을 수는 없다. 이것들은 모두 성격이 다르지만, 거기에 몰려든 군중의 심리는 동일하다.
그러므로 어느 경우이든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훌륭한 지도자가 되려면 군중심리를 잘 이해해야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 르 봉은 세계의 모든 지도자들, 종교나 제국의 창시자들, 뛰어난 정치가들은 항상 무의식적인 심리학자로서 군중의 특성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나폴레옹이 성공한 것도 자나 깨나 군중심리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째든 오늘날은 군중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다.

군중 속의 개인은 무의식 상태에 있어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의식하지 못한다. 군중 속의 개인은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어떤 능력은 완전히 상실하나 다른 능력은 매우 뛰어나다. 군중 속에 있으면 암시에 걸려 무슨 일이든 거침없이 완수하려 한다. 같은 최면에 걸리더라도 개인보다 군중은 한층 더 격렬하게 행동한다. 군중 속에 있으면 모든 개인이 암시에 걸려 상호작용하여 한층 더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된다.
군중의 충동은 개인의 모든 이익을 무시할 정도로 강력하다. 이를테면 군중은 한동안 유혈적인 참극을 빚는 잔혹한 행동을 하다가도 어느 순간 돌변하여 관대하거나 영웅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또 어느 순간에는 거침없이 사형을 집행하다가도 일순간 스스로 순교자로 돌변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