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2015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홍지호의 두 번째 시집 『아주 간단한 스위치』가 민음의 시 340번으로 출간되었다. ‘슬픔의 감각을 깨워 우리를 타인과 연결시키는 시’라는 호평을 받았던 첫 번째 시집 이후로 6년 만의 신작이다. 슬픔과 연결은 여전히 홍지호 시의 핵심적 요소이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한층 더 깊어지고 넓어졌다.
그는 더 이상 슬픔을 슬픔이라 하지 않는다. 홍지호에게 슬픔은 허공을 찢는 소리, 주머니에서 다 녹은 초콜릿, 전화를 걸지 않는 마음, 초를 태우고 남은 향이다. 한때 나를 밝혀 주었지만 이제는 곁에 없는 것. 그러나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 여전히 나의 삶을 지속시키고 있는 영혼의 분실물. 이미 사라진 것들을 허공에 새기며 시인은 그리움을 향해 돌아간다. ‘아주 간단한 스위치’를 누르면 사라진 것들은 섬광처럼 망막을 스치고 첫눈처럼 심장을 두드린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로의 회귀나 고립이 아니다. 홍지호가 발명한 스위치는 사라진 것을 불러오지 않고, 사라짐 속으로 ‘나’를 보내는 방식으로 작동하기에 특별하다. 인생을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라 할 때, 우리는 준비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상실의 예비자가 된다. 소중한 대상과의 이별이 모두에게 공평한 생의 조건이기에, 우리는 모두 『아주 간단한 스위치』가 필요하다.
출판사 리뷰
■ 양방향의 응시
잔청(殘聽)은 있었기 때문에 잔청이며
사라졌기 때문에 잔청……
자백하게 하는 거
두려웠잖아요
더듬거리다가 다시 만나
맹세하게 하는 거
―「돌아가고」에서
이 시는 ‘잔청’이라는 단어에서 소리가 사라졌다는 사실뿐 아니라 소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찾아낸다. 홍지호는 너무도 당연해서 잊고 있던 진실을 우리에게 되돌려준다. 아름답게 흘러가던 고적운 역시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돌아간 것이었어요”. 이처럼 홍지호의 시는 시적 화자가 처해 있는 하나의 관점에서 시작한 뒤, 그에 완전히 반대되는 측면도 함께 제시하며 양방향의 응시를 보여 준다. 내 눈앞에서 사라진 것들은 온전히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에서 도래하고 있다. 아침이 되어 새들이 날아온 것이 아니라 새들의 날갯짓으로부터 아침이 올 수도 있다는 상상력 역시 이에 해당한다.(「아침 새로부터」) 이 시집에서는 많은 것들이 사라진다. 고적운도, 함께 들었던 음악도, 향초의 향도, 누군가의 소원을 싣고 위태롭게 서 있던 돌탑의 돌도, 한때 가깝던 이들도 자꾸 사라진다. 시인은 ‘돌아간다’는 새로운 방향성을 통해, 상실을 등지고 앞으로 나아가거나 상실의 순간에 매몰되지 않는 제3의 방식을 발명해 낸다. 그것은 사라진 것이 다시 드러나고 있을 저 너머 반대편을 그려 보는 일이다.
■ 간단한 스위치로 전하는 간단하지 않은 마음
이뤄질 거야
그 이목구비
딸깍하고 망설이는
순간들의 연합을
고백할 거야
매우 복잡한 설비여
덕분에
우리는 매우 간단한 서로의 스위치가 되었어
돌아가게 되었어
―「돌아가자」에서
“고백할 거야/ 매우 복잡한 설비여// 덕분에/ 우리는 매우 간단한 서로의 스위치가 되었어”에서 드러나듯, 시집의 제목 ‘아주 간단한 스위치’는 역설을 품고 있다. 스위치는 전원을 켜고 끄는 단순한 장치처럼 보이지만, 홍지호의 시에서 그것은 감각의 방향을 전환하고 사라진 것과 남아 있는 것 사이를 오가게 하는 복잡한 장치다. “눈은 내리려다가/ 마주치면/ 사랑”(「계고장」)이 되는 것처럼, 마주침의 순간 딸깍하고 켜지는 이 스위치는 세계를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감각하게 한다. 시집은 그 찰나의 점멸들로 이루어져 있다. ‘소리 없이 속으로 기도했는데 혼잣말에도 대답해 주는 새들에게’ 바치는 자서처럼, 홍지호의 시는 내가 발신한 것이 어딘가에서 반드시 수신된다는 믿음 위에 서 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나의 반대편을 응시하는 행위의 근간이 된다. 우리가 이 시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 또한 바로 이 단단한 믿음이다. 『아주 간단한 스위치』는 잃어버린 것들과 언제든 접속할 수 있는 시적 체험을 독자들에게 선물한다.
기도하러 올라가는 산길에
작은 돌로 세운 탑들이 서 있다
본 적 없는 새들이 날아다니고
살랑 불어오는 바람들은
애지중지 살살 애도로 세웠겠지
누구의 소원인지 모르는 돌 위에
돌을 하나 얹었겠지
떨어지는 꽃잎을 잡으면 이뤄진다는
사랑은
어디에서 누구와 뒹굴고 있나
조심성 없는 바람 때문인지
돌이 몇 개 굴러떨어졌다
애석하다
생각했는데
할머니가 저 돌의 기도는 응답받았구나
귀하다
말해 주었다
―「전설」에서
고개를 까딱까딱 끊어지기 직전
날아가기 위해
탄피로 짐작 가능한
총성의 근원지에서
흩어진 것들을 찾느라
아침이 온 줄도 모르고
―「멀리서 총성이 들리고」에서
갈피를 잡고 하나가 아닌 둘이 되어서
하나에게 또 다른 하나가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 주면서
하나의 새가 볼 수 없는 자신의 눈동자와 서려 있는 햇빛의 모양도 바라보면서
바라봐 주는 하나가 있다는 것도 알려 주면서
(……)
그러므로 알게 된 것입니다.
아침이 되어서 새들이 도착한 것이기도 하지만 어떤 세상에서는
새들로부터 아침이 당도하기도 한다는 것을
―「아침 새로부터」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홍지호
1990년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났다. 2015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 『사람이 기도를 울게 하는 순서』가 있다.
목차
1부
내 것이 아닌 13
돌아가고 16
돌아가자 20
전설 24
생일 28
거리와 자리 30
습지 33
세상에 38
현상 42
멀리서 총성이 들리고 44
자리 46
아침 새로부터 48
새벽에는 부딪히는 소리 51
2부
세계보다 작을 것 57
회상 60
위로 62
진토닉 64
회상?autumn의 입장에서 66
단상?가을의 입장에서 69
도레미파솔라시도 72
잔향 74
라이브 76
손 없는 날 77
캠핑 80
도시라솔파미레도 82
제주에서의 통화 84
산책하자 87
매일매일 92
3부
연희동 놀이터 97
밤새 99
러닝머신 100
결말을 알고 102
진동 104
병 106
계고장 109
월식 112
내가 죄를 짓지 않는 것이 114
화이어 115
침산리 놀이터 118
떼똑 120
고개와 큰 개 121
너머의 고개 126
작품 해설-소유정(문학평론가) 129
마주침의 순간에 나는 소리를 기억한다면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