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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덩이
민음사 | 부모님 | 2007.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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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구덩이』는 플라토노프가 1929년과 1930년 사이에 완성한 작품으로 내전과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러시아는 몹시 피폐해졌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보셰프는 작업을 하다가 멍하니 생각에 잠기곤 했다는 이유로 해고된다. 서른이 되던 생일에 일어난 일이다. 그는 삶의 의미를 찾아 무작정 길을 나서고, 무산계급 인민이 모두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집단 거주 공간을 건설하기 위한 구덩이를 파는 기초 공사 현장에서 일을 구한다. 이곳에서 그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한번 옳다고 생각하면 절대 흔들림 없는 ‘이상적인 노동자’인 치클린. 부르주아 출신에다 우유부단하고 무능력한 지식인인 프루솁스키. 글을 읽거나 쓸 줄은 모르지만 운 좋게 조합 위원장이 되어 알량한 권력을 휘두르며, 노동자의 피땀으로 부르주아 생활을 하는 파시킨. 이런 파시킨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당당하게 그를 괴롭히는 ‘제국주의로 인해 불구가 된’ 자체프. 이들 모두는 ‘인민의 집’을 건설하기 위해 밤낮으로 일을 한다. 그러나 점차 집단화 물결에 휩쓸리고, 본래의 의미는 잊어버린 채 부농 계급을 축출하는 데 정신을 팔기 시작한다. 결국 사람들은 길을 잃고 원래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리며, 마침내 이상향의 터전이었던 구덩이는 버려지고 만다.

  출판사 리뷰

20세기 최초의 디스토피아 소설!

플라토노프는 스탈린의 5개년계획이 시작된 지 불과 2, 3년 후에 이 소설을 썼다. 새로운 기대와 희망으로 충만했던 그때에, 이미 그는 인간 개개인이 집단 속으로 잠식되는 모습을 꿰뚫어보았고 그것을 소설 속에 반영했다. “이 빌어먹을 혁명! 제일 잘났다는 그 혁명은 어디 있어?”라는 말은, 러시아혁명 후에 집단화?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이 차츰 회의와 환멸에 빠질 것을 예견할 뿐 아니라, 이미 인간의 존재 의미를 잃어 가는 모습을 소설 속에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플라토노프가 사회와 정책을 비판하고 풍자하기 위해 글을 쓴 것은 아니었다. 그가 관심을 두었던 것은 그 속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었고, 그는 거기서 현실과 이상의 문제를 찾으려 했다. 플라토노프 역시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유토피아를 희망했지만, 스탈린이 만들어 가는 사회는 결코 자신이 꿈꾸는 유토피아가 될 수 없음을 알았던 것이다. 따라서 그가 그려 낸 『구덩이』는 헛된 이상향을 좇는 사회, 참된 이상향으로의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풍자하는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이렇게 스탈린과 그의 집단화 정책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던 플라토노프는 작품을 발표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의 작품은 사후에 러시아보다는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먼저 알려지기 시작했다. 『구덩이』와 함께 플라토노프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체벤구르』가 1957년에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출간되었다. 그 후 그의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영미권에도 1973년에 번역, 소개되었다. 반면, 러시아에서는 비공식적인 경로로 작품의 일부만 출판되는 등 지하에 묻혀 있다가 공산 정권 말기인 1988년에야 정식으로 출간되었다. 전체의 일부로 전락해 버린 인간 군상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조지 오웰의 『1984』나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같은 디스토피아 소설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문학평론가 해럴드 블룸은 『구덩이』를 ‘20세기 서양 고전’으로 선정한 바 있다.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 사색적이고 낯선 표현이 빚어내는 독특한 분위기
『구덩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잔인할 정도로 사실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사건과 달리 하나하나의 전형적인 인간들을 대표한다.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 또한 일상의 범위를 벗어나, 낯설고 사색적이다. 플라토노프가 시인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반영하듯 사람들의 대화와 상황 묘사는 시적이고, 심지어 어떤 운율마저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정형화된 줄거리뿐 아니라 상식적이고 고정된 표현이나 서술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가장 폭력적인 살인 장면조차 독특한 시선으로 관찰한 철학적 표현이나 침착한 사색적 분위기로 그려 나간다. 이런 점 또한 플라토노프가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았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그는 작가의 입장이나 주인공의 입장, 인간의 입장 등 하나의 관점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입장으로 자리를 옮겨 가면서 객체를 바라보며 상황을 서술한다. 각 순간에 맞는 시선으로 본질적인 의미를 찾아서 독특한 방법으로 표현해 내는 것이 플라토노프 소설의 특징이다.
작가가 이 작품에서 보여 주는 또 하나의 특징은 당대의 사회주의적 표현이다. 작가는 선전, 표어, 슬로건 등과 공산당 조직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일상적인 상황에 적용한다. 특히 어린 소녀 나스탸는 주위에서 범람하는 정치적 언어를 아무 여과 없이 사용한다. ‘대리 아빠’가 되어 준 치클린에게 “부농을 완전 근절하라!” 같은 표어를 사용하면, 그는 소녀의 애정을 읽어 내고 감동을 받는다. 이와 같은 표현은 독자들에게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지지만, 당시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정치적 언어와 플라토노프의 고유한 시적 표현이 정면으로 충돌함으로서 『구덩이』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으며, 이것을 이 작품의 큰 매력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작가 소개

저자 :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본명은 안드레이 플라토노비치 클리멘토프. 1899년 러시아 남서부 보로네시에서 철도 기계공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고향의 공과대학에서 기술자 학위를 받고 토지개발 기술자, 댐 건설 기술자로 근무하는 한편 지역 문단에서 활동하여 1922년 시집 『푸른 심연』을 출판했다. 1927년 모스크바로 이주하여 전업 작가가 되었다. 1929년에서 1930년 사이에 『구덩이』와 『체벤구르』를 완성했으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들은 정치적 탄압 때문에 플라토노프가 살아 있는 동안 출판되지 못했다. 이와 함께 「의심하는 마카르」,「저장용으로」 등 많은 단편도 저작했으나 공산주의 체제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출판을 금지당하여 문학 비평을 쓰거나 잡지의 자문으로 일하여 생계를 유지하였다. 1938년, 15세이던 아들이 ‘음모를 꾸몄다.’는 이유로 체포당해 2년 동안 강제 수용소에 수용되었다. 폐결핵에 걸린 채 풀려난 아들을 간호하다가 플라토노프도 폐결핵에 걸렸다. 1942년에서 45년까지,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종군기자로 자원하여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기사와 단편을 썼다. 1946년 출판한 단편 「귀향」 때문에 신랄하게 비난받고 작품 활동을 완전히 금지... 당했다. 이후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다 1951년 사망하였다. 그의 작품은 프랑스를 비롯하여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서유럽과 미국에서 먼저 출판되어 알려졌으며, 고국 러시아에서는 사후 30년 이상 지난 1980년대 후반에야 출판되어 각광 받기 시작했다.

역자 : 정보라
연세대학교 인문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 대학교에서 러시아 동유럽 지역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어학연수를 거쳐 현재 미국 인디애나 대학교 슬라브어문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옮긴 책으로 『창백한 말』, 『모래시계 요양원』, 『계피색 가게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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