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고려 중엽 승려인 일연이 지은 역사책으로 단군 조선의 건국신화에서부터 고려 중엽까지의 일들이 아주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더불어 현존하는 한국 고대 사적(史籍)의 쌍벽을 이루고 있다.
<삼국사기>에서는 볼 수 없는 많은 고대 사료들을 수록하고 있어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문헌이며, 그 방대함과 역사 기술상의 독특함으로 이미 고전 중의 고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삼국유사>를 더 상세하고 젊은 언어로 충실하게 해석했다. 부록으로 왕력과 일연과 삼국유사의 시대를 담았다.
출판사 리뷰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더불어 현존하는 한국 고대 사적(史籍)의 쌍벽 {삼국유사}.
지금으로부터 천 오백 년 전쯤 이 땅에 살았던 조상들의 삶을 고스란히 찾아가 볼 수 있다.
{삼국사기}에서는 볼 수 없는 많은 고대 사료들을 수록하고 있어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문헌이며, 그 방대함과 역사 기술상의 독특함으로 이미 고전 중의 고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삼국유사}를 더
상세하고 젊은 언어로 충실하게 해석했다.
♣ {삼국유사}라는 책
1145년 고려 인종 23년에 우리의 고대사를 정리하는 역사서의 편찬에 대해 관심으로 인해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100여 년이 흐르는 동안 고려 사회는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문신귀족들의 차별에 불만을 품은 무인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정권을 잡은 것이다. 무인들의 집권은 단순히 집권 자체로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사람들의 세계관에 변화를 주었다.
또 송(宋)나라의 멸망과 원(元)나라의 성립은 우리 중심의 새로운 세계관을 형성해 보려던 고려의 정권 담당자들에게 커다란 충격과 암시를 함께 주었다. 하늘처럼 알았던 중국도 변방의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음으로써 당대의 관념은 완전히 무너졌다.
{삼국유사} 탄생의 배경은 이 두 가지 당대의 세계사적 사건에 기인한다. 세계관의 변화는 역사관의 변화를 가져왔고, 모든 것을 중국 중심으로 해석했던 {삼국사기}의 역사기술은 이제 힘을 잃고
{삼국유사}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 {삼국유사}의 구성
{삼국유사}는 전체가 9개 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왕력(王曆) 기이(紀異) 흥법(興法) 탑상(塔像) 의해(義解) 신주(神呪) 감통(感通) 피은(避隱) 효선(孝善)이 그것이다.
전체적인 구성을 본다면 연대기로서 왕력, 준(準)역사서로서 기이, 불교문화사적 관점에서 당대인의 삶을 기록한 흥법 이하의 여러 편으로 삼대분(三大分)해 볼 수 있다.
여기서 왕력은 {삼국유사} 전체 기술의 기반이 되는 부분이고, 기이는 양적으로도 역사자료의 가치를 충분히 가지고 있지만, 기술방식이나 역사관에서 {삼국사기}와 다른 질적인 면이 있다. 특히 [기이]편은
그 서문에서 밝힌 바 우리에게 뿌리가 되는 나라와 왕들을 비록 기이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나 굳이 수록했다는 것, 그래서 단군신화가 처음으로 문서상에 기록되었다는 데에서 더 이상 강조할 필요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
[흥법] 이하의 편들을, 불교문화사적 관점에서 당대인의 삶을 기록했다. 일연은 승려이고 분명한 불교적 역사의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불교문화사란 그런 저자에게서 나올 수 있는 당연한 결과다. 다만 불교
하나로 모든 것을 재단하고 있지 않다는 점, 그러므로 읽는 이도 어떤 편협한 선입관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일연은 {삼국유사}를 쓰면서 이 책이 {삼국사기} 같은 역사서로만, {고승전} 같은 불교서로만 만족하지 않았다. 그것들이 어우러지면서 우리 고대사를 입체적으로 조망해 볼 어떤 틀을 만들어 냈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본문 중에서고조선{고기}(古記)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옛날 환인(桓因)의 서자 환웅(桓雄)이 자주 하늘 아래에서 사람이 사는 세상을 찾아가고자 하였다. 아버지가 자식의 뜻을 알고, 아래로 세 봉우리가 솟은 태백산을 굽어보니,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만하였다. 이에 천부(天符)의 증표 세 개를 주어 가서 다스리도록 하였다.
환웅은 3천 명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마루 신단수 아래로 내려왔다. 이 곳을 일러 신시(神市)라 하였고 스스로를 환웅천왕이라 불렀다. 풍백(風伯), 우사(雨師) 그리고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
운명 질병 형법 선악을 주관하는 등 무릇 세상의 3백 60여 가지 일을 맡아보고, 세상에 있으며 교화를 베풀었다.
그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굴에 같이 살면서, 늘 환웅 신에게 자신들이 사람으로 변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환웅 신은 신령스런 쑥 한 다발과 마늘 스무 낱을 주고서, '너희들은 이것을 먹고
1백일간 햇빛을 보지 말아라. 사람의 모습을 얻게 될 게야' 라고 말했다. 곰과 호랑이는 받아서 그것을 먹고 21일을 꺼렸는데, 곰은 여
작가 소개
저자 : 일연
고려 후기의 고승으로 1206년 장산군(경북 경산)에서 태어나 14세에 출가하였다. 1236년 몽골의 침입으로 생길 화를 피하고자 염을 하며 감응을 빌었는데, 어느 날 크게 까달음을 얻어 ‘오늘에야 삼계(三界)가 꿈과 같음을 알았고, 대지가 털끝만큼의 거리낌도 없음을 보았노라’고 시가를 지었다. 그 후 팔만대장경이 완성되던 시기 남해 정림사에 머물며 대장경 제작에 참여하였고, 72세에 충렬왕의 명에 의해 운문사에 머물렀는데 이 무렵부터 『삼국유사』를 집필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78세에는 국존에 책봉되었다가 늙은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인각사로 거처를 옮겼고 1289년 6월에 입적하였다. 시호는 보각(普覺)이며, 인각사에 그의 탑과 비석이, 운문사에는 행적비가 있다. 저서로는 우리나라 고대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인 『삼국유사』를 비롯해 『어록』, 『계승잡저』, 『중편조동오위』, 『대장수지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