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일제강점기 새로읽기 2권. 나혜석이 발표한 글 가운데 페미니스트 입장의 산문만을 묶은 것이다. '이혼고백서', '모 된 감상기' 등 대표적인 글을 망라하고 있다. 나혜석의 글 속에는 척박했던 일제강점기 우리 사회의 모습과 시대를 앞서 살며 세상과 불화할 수밖에 없었던 한 선각자의 사상이 오롯이 담겨 있다. 1부는 이혼 전에 쓴 글이고, 2부는 이혼 후의 글이다. 이혼 전과 후의 그의 생각이 얼마나 같고 다른지를 살펴보는 것도 책을 읽는 묘미다.
출판사 리뷰
우리나라 최초의 페미니스트 작가 나혜석이 100년후 독자에게 묻는다. 한 세기 전의 자신의 주장이 지금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만큼 과격한가고.
정조는 취미다
“조선 남성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 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 남의 정조를 유인하는 이상 그 정조를 고수하도록 애호해 주는 것도 보통 인정이 아닌가.” -〈이혼 고백장〉
“정조는 도덕도 법률도 아무 것도 아니요, 오직 취미다. 밥 먹고 싶을 때 밥 먹고, 떡 먹고 싶을 때 떡 먹는 것과 같이 임의용지任意用志로 할 것이요, 결코 마음의 구속을 받을 것이 아니다.” -〈신생활에 들면서〉
‘정조의 해방’을 주장한 글이다. 봉건질서에 쩔어 있던 시기였던 만큼, 세상이 뒤집어질 만한 사건이었다. 〈이혼 고백장〉을 통해 여성만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를 통렬히 비판한 데 이어 나혜석은 3·1만세운동 지도자의 한 사람이었던 최린에게 정조유린죄 소송을 제기하였다. 나혜석의 행동은 당시 사회에서는 금기였다. 세상은 그에게 손을 내밀기는커녕 손가락질하고 저주하였다. 욕을 하기는 여성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거의 재기할 기분이 없을 만치 때리고 욕하고 저주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필경은 같은 운명의 줄에 엉키어 없어질지라도 필사의 쟁투에 끌리고 애태우고 괴로워하면서 재기하려 합니다.” -〈이혼 고백장〉
우리는 인형이 아니다
나혜석은 동경에 유학하던 십대 후반부터 이미 선각자로서 여성해방에 대한 생각을 가다듬어왔다.
내가 인형을 가지고 놀 때/기뻐하듯/아버지의 딸인 인형으로/남편의 아내 인형으로/그들을 기쁘게 하는/위안물 되도다/노라를 놓아라/최후로 순수하게/엄밀히 막아놓은/장벽에서/견고히 닫혔던/문을 열고/노라를 놓아주게
1921년 《매일신보》에 실린 나혜석의 시다. ‘노라’는 여성 해방의 상징이다.
“여성을 보통 약자라 하나 결국 강자이며, 여성을 작다 하나 위대한 것은 여성이외다. 행복은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는 그 능력에 있는 것이외다. 가정을 지배하고, 남편을 지배하고, 자식을 지배한 나머지에 사회까지 지배하소서. 최후 승리는 여성에게 있는 것 아닌가.” -〈이혼 고백장〉
이처럼 열정적으로 여성해방을 외치던 나혜석은 끝내 세상의 거대한 벽 앞에 좌절하고 만다.
70년 만에 부활하는 나혜석
“에미를 원망치 말고, 사회 제도와 도덕과 법률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에미는 과도기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희생된 자였더니라.” -〈신생활에 들면서〉
사회의 냉대 속에서 몸과 마음을 다친 나혜석은 차츰 세상에서 잊혀졌다. 1948년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생을 마감한 행려병자 하나가 용산 시립 자제원으로 이송되었다. 아무도 그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화가 나혜석인 줄 몰랐다.
그리고 70년이 흘렀다. 그가 땅 속에 누워 침묵을 이어간 다음에야 세상을 그를 새롭게 조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페미니스트인가》는 나혜석이 발표한 글 가운데 페미니스트 입장의 산문만을 묶은 것이다. 〈이혼고백서〉 〈모 된 감상기〉 등 대표적인 글을 망라하고 있다. 가갸날은 올 초 우리나라 여성 가운데 최초로 세계를 일주한 나혜석의 여행기를 《조선여성 첫 세계일주기》라는 이름으로 펴낸 바 있다. 《나는 페미니스트인가》는 《조선여성 첫 세계일주기》에 앞서 펴내려던 것이 가갸날이 새롭게 시도하는 ‘일제강점기 새로읽기’ 시리즈로 확정되면서 출간이 지체되었다. 지난 1년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일제강점기의 우리 문화를 새롭게 조명하는 시리즈의 하나로 세상에 내놓는다.
나혜석의 글 속에는 척박했던 일제강점기 우리 사회의 모습과 시대를 앞서 살며 세상과 불화할 수밖에 없었던 한 선각자의 사상이 오롯이 담겨 있다. 1부는 이혼 전에 쓴 글이고, 2부는 이혼 후의 글이다. 이혼 전과 후의 그의 생각이 얼마나 같고 다른지를 살펴보는 것도 책을 읽는 묘미다.
인형의 가家
내가 인형을 가지고 놀 때
기뻐하듯
아버지의 딸인 인형으로
남편의 아내 인형으로
그들을 기쁘게 하는
위안물 되도다
노라를 놓아라
최후로 순수하게
엄밀히 막아놓은
장벽에서
견고히 닫혔던
문을 열고
노라를 놓아주게
남편과 자식들에 대한
의무같이
내게는 신성한 의무 있네
나를 사람으로 만드는
사명의 길을 밟아서
사람이 되고자
노라를 놓아라
최후로 순수하게
엄밀히 막아놓은
장벽에서
견고히 닫혔던
문을 열고
노라를 놓아주게
나는 안다 억제할 수 없는
내 마음에서
온통을 다 헐어 맛보이는
진정 사람을 제하고는
내 몸이 값없는 것을
내 이제 깨도다
노라를 놓아라
최후로 순수하게
엄밀히 막아놓은
장벽에서
견고히 닫혔던
문을 열고
노라를 놓아주게
아아 사랑하는 소녀들아
나를 보아
정성으로 몸을 바쳐다오
많은 암흑 횡행할지나
다른 날, 폭풍우 뒤에
사람은 너와 나
노라를 놓아라
최후로 순수하게
엄밀히 막아놓은
장벽에서
견고히 닫혔던
문을 열고
노라를 놓아주게
모(어머니) 된 감상기
이러한 심야, 아까처럼 만사를 잊고 곤한 춘몽春夢에 잠겼을 때 돌연 옆에서 잠잠한 밤을 깨뜨리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벼락같이 난다. 이때에 나의 영혼은 꽃밭에서 동무들과 끊임없이 웃어가며 평화의 노래를 부르다가 참혹히 쫓겨났다.
나는 벌써 만 1개년간을 두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밤에 이러한 곤경을 당하여 오므로 이렇게 ‘으아’ 하는 첫소리가 들리자, ‘아이고, 또’ 하는 말이 자신도 모르게 나오며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나는 어서 속히 면하려고 신식 차례 정하는 규칙도 집어치우고 젖을 대주었다. 유아는 몇 모금 꿀떡꿀떡 넘기다가 젖꼭지를 스르르 놓고 쌕쌕하며 깊이 잠이 들었다.
나는 비로소 시원해서 돌아누우나 나의 잠은 벌써 서천 서역국으로 순식간에 멀리 달아났다. 그리하여 다만 방 한가운데 늘어져 환히 켜 있는 전등을 향하여 눈방울을 자주 굴릴 따름. 과거의 학창시대로부터 현재의 가정생활, 또 미래는 어찌 될까! 이렇게 인생에 대한 큰 의문, 그것에 대한 나의 무식한 대답, 고통으로부터 시작하였으나 필경은 재미롭게 밤을 새우는 것이 병적으로 습관성이 되다시피 하였다.
정직히 자백하면 내가 전에 생각하던 바와 지금 당하는 사실 중에 모순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나, 어느 틈에 내가 처妻가 되고 모母가 되었나? 생각하면 확실히 꿈속 일이다. 내가 때때로 말하는 ‘공상도 분수가 있지!’ 하는 간단한 경탄어가 만 2개년간 사회에 대한, 가정에 대한 다소의 쓴맛 단맛을 맛본 나머지의 말이다.
실로 나는 짜릿짜릿하고, 부르르 떨리며, 달고, 열나는 소위 사랑의 꿈은 꾸고 있었을지언정, 그 생활에 비장된 반찬 걱정, 옷 걱정, 쌀 걱정, 나무 걱정, 더럽고, 게으르고, 속이기 좋아하는 하인과의 싸움으로부터 손님맞이에 대한 범절, 친척에 대한 의리, 사소한 말과 행동이 모두 남을 위하여 살아야 할 소위 가정이란 것이 있는 줄 뉘 알았겠으며, 더구나 빨아댈 새 없이 적셔 내놓는 기저귀며 주야 불문하고 단조로운 목소리로 깨깨 우는 소위 자식이라는 것이 생기어, 내 몸이 쇠약해지고 내 정신이 혼미하여져서 ‘내 평생소원은 잠이나 실컷 자보았으면’ 하게 될 줄이야 뉘라서 상상이나 하였으랴.
그러나 불평을 말하고 싶은 것보다 인생에 대하여 의문이 자라가며, 후회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남보다 더 한 가지 맛을 봄을 행복으로 안다. 그리하여 내 앞에는 장차 더한 고통, 더한 희망, 더한 낙담이 있기를 바라며, 그것에 지지 않을 만한 수양과 노력을 일삼아 가려는 동시에 정월(晶月: 나혜석의 호-편집자 주)의 대명사인 ‘나열(羅悅: 첫 딸의 이름-편집자 주)의 모母’는 ‘모母 될 때’로 ‘모母 되기’까지의 있는 듯 없는 듯한 이상한 심리 중에 ‘있었던 것을’ 찾아 여러 신식 어머니들께 ‘그렇지 않던가요, 안 그랬어요’라고 묻고 싶다.
. . . (중간 생략)
아프데 아파
참 아파요 진정
과연 아프데
푹푹 쑤신다 할까
씨리 씨리다 할까
딱딱 결린다 할까
쿡쿡 찌른다 할까
따끔따끔 꼬집는다 할까
찌르르 저리다 할까
깜짝깜짝 따갑다 할까
이렇게 아프다나 할까
아니라, 이도 아니라
박박 뼈를 긁는 듯
쫙쫙 살을 찢는 듯
빠짝빠짝 힘줄을 옥죄는 듯
쪽쪽 핏줄을 뽑아내는 듯
살금살금 살점을 저미는 듯
오장이 뒤집혀 쏟아지는 듯
도끼로 머리를 바수는 듯
이렇게 아프다나 할까
아니라, 이도 또한 아니라
조그맣고 샛노란 하늘은 흔들리고
높은 하늘 낮아지며
낮은 땅 높아진다
벽도 없이 문도 없이
통하여 광야 되고
그 안에 있는 물건
쌩쌩 돌다가는
어쩌면 있는 듯
어쩌면 없는 듯
어느덧 맴돌다가
갖은 빛 찬란하게
그리도 곱던 색에
매몰히 씌워주는
검은 장막 가리우니
이 내 작은 몸
공중에 떠 있는 듯
구석에 끼여 있는 듯
침상 아래 눌려 있는 듯
오그려졌다 펴졌다
땀 흘렸다 으스스 추웠다
그리도 괴롭던가!
그다지도 아프던가!
차라리
펄펄 뛰게 아프거나
쾅쾅 부딪게 아프거나
끔벅끔벅 기절하듯 아프거나
했으면
무어라 그다지
10분간에 한 번
5분간에 한 번
금세 목숨이 끊일 듯이나
그렇게 이상히 아프다가
흐리던 날 햇빛 나듯
반짝 정신 상쾌하며
언제나 아팠는 듯
무어라 그렇게
갖은 양념 가하는지
맛있게도 아파라
어머님, 나 죽겠소
여보 그대, 나 살려주오
내 심히 애걸하니
옆에 팔장끼고 섰던 부군
‘참으시오’ 하는 말에
‘이놈아, 듣기 싫다’
내 악 쓰고 통곡하니
이 내 몸 어이타가
이다지 되었던고
-1921년 5월 8일 산욕産褥 중에서
탐험하는 자가 없으면 그 길은 영원히 못 갈 것이요, 우리가 욕심을 내지 아니하면 우리 자손들을 무엇을 주어 살리자는 말이오? 우리가 비난을 받지 않으면 우리의 역사를 무엇으로 꾸미자는 말이오?
내가 인형을 가지고 놀 때
기뻐하듯
아버지의 딸인 인형으로
남편의 아내 인형으로
그들을 기쁘게 하는
위안물 되도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몇 달간 계속되더니 심신의 피곤은 이젠 극도에 달하여 정신엔 광증狂症이 생기고, 몸에는 종기가 끊일 새가 없었다. 내 눈은 항상 체 쓴 눈이었고, 몸은 마치 독갑이같아 해골만 남았었다. 그렇게 내가 전에 희망하고 소원하던 모든 것보다 오직 아침부터 저녁까지 똑 하루만, 아니 그는 바라지 못하더라도 꼭 한 시간만이라도 마음을 턱 놓고 잠 좀 실컷 자보았으면 당장 죽어도 원이 없을 것 같았다. … 진실로 잠은 보물이요, 귀물이다. 그러한 것을 탈취해 가는 자식이 생겼다 하면, 이에 더한 원수는 다시없을 것 같았다. 그러므로 나는 ‘자식이란 모체의 살점을 떼어가는 악마’라고 정의를 발명하여 재삼 숙고하여 볼 때마다 이런 걸작이 없을 듯이 생각했다.
작가 소개
저자 : 나혜석
이땅 최초의 여성 동경 유학생이자 서양화가다. 수원에서 태어나 1913년 진명여고보를 졸업하고 도쿄사립여자미술학교에 진학, 여성의 삶을 옥죄는 제도와 사회현실에 눈을 뜬다. ‘사람이 되고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그는 문필활동을 통해 전통적인 여성관에 도전하고, 3·1운동에 관련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결혼후 더욱 거대한 벽을 절감해야 했던 그에게 꿈도 꾸어보기 어려운 세계일주 여행의 기회가 찾아왔다. 세계여행은 사상적 해방구였던 동시에 나락의 길로 떨어지는 빌미가 되었다. 파리에서 만난 최린과의 연애사건으로 35세의 젊은 나이에 그는 모든 것을 잃고 혼자의 몸이 되어야 했다. 나혜석은 〈이혼고백서〉를 발표해 여성에게만 정조를 강요하는 남성이기주의를 고발하는 한편 작가로서 홀로서기를 시도한다. 하지만 사회의 냉대는 그에게서 자립의 기회는 물론 건강마저 앗아가고 만다. 시대와 화합할 수 없었던 불꽃같은 예술가의 삶은 1948년 무연고 행려병자로서 막을 내린다.
목차
1부
잡감-K언니에게 드림
모(어머니) 된 감상기
나를 잊지 않는 행복
생활 개량에 대한 여자의 부르짐음
2부
아아, 자유의 파리가 그리워
이혼 고백장
신생활에 들면서
조선 여성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