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J.H Classic 67권. 주영만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일상과 자연이 만나는 자리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통해서 언어의 빛을 발산하는 과정에서 생성된다. 그의 시는 어떤 목적성에 매몰되어 있지 않고 신속한 결론에 도달하려는 조급성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것은 그의 시의 바탕이 본질적으로 자연과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토란이 자라는 동안>은 그의 시적 향일성이고, 존재의 가벼움이며, 시인과 물토란이 하나가 되는 진경眞景의 세계라고 할 수가 있다.
출판사 리뷰
물토란이 새순 돋아 봄 햇볕을 흠뻑 흡입하며 자라는 동안// 그는 줄곧 그 향일성(向日性)의 무게에 대하여 생각한다// 가벼움이여// 허공으로 가늘고 길게 뻗은 몇 개의 줄기 꼭대기마다 한 개의 입술 모양의 잎을 햇볕 속으로 떠받치듯 밀어올린 물토란은 그 잘록한 허리가 요염하게 휘어진 채 풍경(風景)이 되어도 이제는 더 이상 이 세상 어디에도 그는 없다
----{물토란이 자라는 동안} 전문
주영만 시인의 시들은 일상과 자연이 만나는 자리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통해서 언어의 빛을 발산하는 과정에서 생성된다. 그의 시는 어떤 목적성에 매몰되어 있지 않고 신속한 결론에 도달하려는 조급성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것은 그의 시의 바탕이 본질적으로 자연과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물이다. 노자가 인간의 부드러운 덕성을 물에 비유해서 상선약수(上善若水)를 말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물은 세상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힘차고 때로는 부드럽고 때로는 차갑고 때로는 따뜻하다. 그러다가 물은 햇빛과 만나면 증발하여 하늘로 오르기도 한다. 인간의 몸은 일반적으로 70프로가 물로 되어있다고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 물의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러한 속성은 인간의 몸 뿐 아니라 내면에도 적용된다. 인간의 마음이 변화무쌍하면서도 일정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물의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주영만 시인의 시 중에도 물 이미지가 중심이 되어 있는 시들이 많이 있다. 먼저 다음의 시를 읽어보자.
강물은 찰랑찰랑 흔들리는군// 바람은 지나갈 듯 말 듯 하다가 그냥 그 자리에 서 있는군// 혼자 중얼거리는군// 오래 서 있어도 허리는 아프지 않는군// 그래도 그대와 나 사이의 거리는 팽팽하게 좁혀지지 않는군// 그러나 강물은 흐르지만 흘러넘치지 않게// 그러나 바람은 혼자 서 있어도 외롭지 않게// 밖으로 뛰쳐나가지 않는 기타 음(音)처럼// 그렇지'라고 느낄 때까지// 소나기가 온 뒤 나뭇잎에 맺힌 물방울이 이제 막 떨어질 때까지// 숨을 한 번 또 한 번 깊게 들이마시고// 마음이 자꾸 안으로 안으로 기어들어가는군
―「조율(調律)」 전문
자세히 살펴보면 세상은 여러 종류의 사물이나 존재가 서로 얽혀 있으면서 일정한 관계를 이루고 있는 집합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세상 속의 관계가 서로 상응하여 호응을 이루지 못하고 어긋나거나 서로 파괴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서로 조율이 필요하다. 위의 시는 그대와 나 사이에서 팽팽하게 좁혀지지 않는 거리를 물이나 바람 같은 자연의 여러 현상으로 비유하고 있다. 강물이 찰랑찰랑 흔들리는 모습이나 바람이 지나갈 듯 말 듯 하다가 그냥 그 자리에 서서 혼자 중얼거리는 것은 인간을 닮았다. 그러나 이런 강물이나 바람의 태도는 어딘가 허전하고 외롭게 느껴진다. 그리하여 시의 화자는 “강물은 흐르지만 흘러넘치지 않게”“바람은 혼자 서 있어도 외롭지 않게” “밖으로 뛰쳐나가지 않는 기타 음(音)처럼/'그렇지'라고 느낄 때까지” 조율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마음은 안으로 안으로 자꾸 기어들어가게 된다. 이렇듯 인간의 마음은 쉽게 어긋나서 아이러니한 상황이 될 때가 있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신의 마음을 완벽하게 조율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빈집으로 돌아왔다// 침묵으로 사그라들던 오후와 희미하고 해묵은 햇볕의 온기(溫氣)가 아직은 방 한쪽에 남아 있었다// 누워서, 흐르는 강물처럼 누워서//그는 해가 기우는 것처럼 간단한 한 획(劃)으로 저물어 갔었다// 바람 타고 흩날리는, 어지럽게 흩날리는// 그 한 획(劃)의 곡조(曲調),
―「빈집」 전문
주영만 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비어있음’에 대한 사유가 자주 발견된다. 그것은 아마도 시인이 지니고 있는 비움의 철학과 관계된 것처럼 보인다. 인간은 어머니의 자궁에 있다가 그 자궁을 비우고 세상에 나온다. 그 순간 어머니의 자궁은 빈집이 된다. 그렇게 인간은 한평생을 살다가 무덤이라는 빈집에 든다. 빈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이러한 사유는 그의 또 다른 시 「혼자서 가네」에서 “이 세상으로 처음 나올 때의 안간힘을 다해 빠져나왔던 그 좁은 구멍 속으로 당신은 다시 들어가네”라는 구절에도 보인다. 위의 시도 이러한 정조를 어느 정도 내장하고 있다. 빈집으로 돌아온 주체가 “침묵으로 사그라들던 오후와 희미하고 해묵은 햇볕의 온기(溫氣)가 아직은 방 한쪽에 남아 있”음을 느끼면서 “흐르는 강물처럼 누워” “해가 기우는 것처럼 간단한 한 획(劃)으로 저물어”가는 모습은, 마지막 임종을 남겨놓은 인간의 실존을 연상하게 해준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생이란 “바람 타고 흩날리는, 어지럽게 흩날리는/ 그 한 획(劃)의 곡조(曲調)”로 은유될 수 있다. 여기서 화자가 유독 ‘한 획’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뚜렷한 삶의 족적을 남기고 싶어하는 시인으로서의 실존적 삶의 태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불혹에는 너무 혹해서 허무했고 그 후 내내 나는 도무지 고독했고 한 바퀴 돌아 귀가 순해질 때면 비로소 사랑하리라// 초겨울 밤에는 둥지에 달빛이 고이는/
별똥별처럼/ 눈이 멀고야 마는
―「사랑」 전문
아주 높이 굴뚝같은 마음으로 하늘길을 찾았습니다만 뭉글뭉글 지나가는 구름 근처에서 그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잔뜩 목을 뒤로 꺾고 올려다보는 지상에서는 하루해가 짧았습니다
―「그리움」 전문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삶에 대한 아쉬움이나 후회의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다. 시인은 앞의 시 「사랑」에서 “불혹에는 너무 혹해서 허무했고 그 후 내내 나는 도무지 고독했고 한 바퀴 돌아 귀가 순해질 때면 비로소 사랑하리라”는 다짐을 하고 있다. 시의 내용으로 보면 불혹의 젊은 날에는 제대로 된 사랑을 못해보다가 이순이 되어서야 비로소 사랑을 해보겠다는 것은 어딘가 아이러니 하다. 하지만 이런 것이 사랑의 속성이다. 봄에서 가을에 이르는 따뜻하고 좋은 계절은 다 보내고 “초겨울 밤에는 둥지에 달빛이 고이는/ 별똥별처럼/ 눈이 멀고야 마는” 사랑을 해보겠다는 것은 아이러니하지만, 그 속에 사랑의 진실한 속성이 숨어있다.
‘그리움’을 소재로 한 두 번째 시는 화자가 ‘연기’가 되어 찾아가는 그리움의 길을 보여준다. 화자가 가고 싶은 그리움의 길은 “아주 높이 굴뚝같은 마음으로” 찾아가는 ‘하늘길’이다. 그러나 그 길은 늘 현실보다 높은 곳에 있어서 “잔뜩 목을 뒤로 꺾고 올려다보”아야 하는 길이다. 그러므로 그리움은 끝끝내 해소되지 않고, 그리움을 찾아가는 하루해는 짧을 수밖에 없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시인이 시를 쓰는 일도 사랑과 그리움을 찾아가는 또 다른 행위이다. 시인은 지금도 시라는 깊은 잠에 빠져 “한 송이 꽃이 피었다가 지는/무궁(無窮)으로 가는 길”(「깜박 잠」) 위에 서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주영만 시인의 시는 일상과 자연이 만나는 길목에서 반짝이고 있다. 그의 시의 반짝임은 물을 닮아 있어서 물 흐르듯 변화무쌍하다. 그의 시가 불연속적 사유에 바탕을 둔 환유적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쉽게 어떤 결론이나 주제에 기울어지지 않는 텐션으로 작용한다. 그의 시의 또 다른 특징은 자연을 전경화함으로써 탈중심주의적 상상력의 일단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시적 특성은 그의 자연을 닮은 순수한 성품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므로 그의 시에는 천상병을 닮은 천진성과 윤동주 시가 지니고 있는 염결성이 맑게 고여있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에는 사랑과 그리움을 향한 열정이 무궁(無窮)을 향해 열려있다. 그의 시는 열린 사고를 통환 환유 시를 지향한다. 그의 시에서 서사와 이미지가 어우러져 병치를 이루면서 단순하지 않은 환유적 긴장관계를 보여주는 것은, 그 이면에 숨은 의미를 암시해주는 기능을 숨기고 있어서 더욱 이채롭다. 그러므로 참으로 오래간만에 선보이는 그의 이번 시집이 시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좋은 전범(典範)이 되리라 생각한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주영만
시인. 1957년 대전에서 출생했고, 1991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했다. 2001년 시집 {노랑나비, 베란다 창틀에 앉다}(시와시학사)를 출간했으며, 내과전문의로서 현재 경기도 광명시 우리내과의원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주영만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인 {물토란이 자라는 동안}은 일상과 자연이 만나는 자리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통해서 언어의 빛을 발산하는 과정에서 생성된다. 그의 시는 어떤 목적성에 매몰되어 있지 않고 신속한 결론에 도달하려는 조급성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것은 그의 시의 바탕이 본질적으로 자연과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토란이 자라는 동안}은 그의 시적 향일성이고, 존재의 가벼움이며, 시인과 물토란이 하나가 되는 진경眞景의 세계라고 할 수가 있다.
목차
시인의 말 5
1부 물토란이 자라는 동안
물토란이 자라는 동안 12
사선斜線에서 13
열대야熱帶夜 14
여여如如하다 15
지는 해 16
달빛과 풀벌레 소리 17
어둠의 중심 ―시詩 18
누이 20
깜빡 잠 21
조율調律 22
혼자서 가네 24
빈집 25
모색摸索 1 26
모색摸索 2 27
모색摸索 3 28
모색摸索 4 29
모색摸索 5 30
모색摸索 6 31
모색摸索 7 33
모색摸索 8 ―물이 오른다는 것 34
모색摸索 9 ―우리는 그냥 말없이 웃었다 35
2부 서산마루에 서다
맹인盲人 38
그네와 아이 ―현이에게 39
서산마루에 서다 ―어떤 이별 40
사랑 41
황사 42
한밤중에 43
불연속선 44
풍란風蘭 45
장마 46
가을 47
또 황사 48
그리움 ―연기 2 49
역광, 혹은 시간 50
풍경風景 51
노인 2 54
물방울종鐘 55
봄비 56
여우비 57
시간 밖으로 58
고독 59
거미 60
3부 가을을 닮다
낮달 62
고도근시高度近視 63
늦가을 바람에 64
마른장마 65
통증 66
거울 ―K에게 67
가을을 닮다 69
종소리 70
장맛비 71
가슴이 아프다 72
걸음 74
낙엽落葉 76
겨울밤 77
일몰日沒 78
이렇게 자꾸자꾸 울고 있자면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되어
너를 적실 거라고 ―손기섭 시인의 시 장마 중에서 79
처서處署 80
불길한 예감 82
할렐루야 83
겨울 강 85
해설 일상과 자연의 환유적 모색을 통한 존재 찾기 - 박남희 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