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80년대를 살아온 우리는 모두들 한번쯤 고민해본 질문이 있었다. “80년 광주의 그 날, 내가 윤상원이었다면 정말 죽을 줄 알면서도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을까?” 이 책은 1980년 5월 27일 광주항쟁 당시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켰던 윤상원의 아버지 윤석동의 일기다.
출판사 리뷰
80년대를 살아온 우리는 모두들 한번쯤 고민해본 질문이 있었다. “80년 광주의 그 날, 내가 윤상원이었다면 정말 죽을 줄 알면서도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을까?”
이 책은 1980년 5월 27일 광주항쟁 당시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켰던 윤상원의 아버지 윤석동의 일기다.
윤상원의 아버지 윤석동은 1988년부터 2007년까지 스무 해 일기를 썼다. 하루도 쉬지 않고 농사를 지었고 틈틈이 광주로 나가 유족회를 이끌었다. 이 시대에 이렇게 성실한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1995년 제정된 <5·18특별법>과 2001년 통과된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는 윤석동이 흘린 땀과 눈물이 배어 있었다. ‘산 자여 따르라’를 부르면서 아들을 따라간 윤석동, 그는 우리 시대 ‘고리끼 아버지’였다.
편집자의 글 중에서 :
윤석동 일기의 원본은 방대하다. 1988년에서 2007년까지 2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작성했다. 우리 시대에 이렇게 성실하게 일기를 기록한 이가 또 있을까? 총 20권의 일기장은 책 여덟 권의 분량이었다. 이 방대한 원본 일기를 나는 한 권으로 줄였다.
원본 일기에서 명사는 대부분 한자였다. 나는 한자를 한글로 변환하였다. 원본 일기의 형용사와 동사는 대부분 한글이었다. 일제 치하에서 국문을 익힌 어른들은 소리 나는 대로 한글을 쓴다. 띄어 쓰지도 않는다. 그래서 어르신들의 한글은 한자보다 해독하기 힘들다.
윤석동 일기의 원본을 정서하고 풀이하는 작업은 김동민과 박전일 등사)인문연구원 동고송 연구원들의 공동 노력으로 진행되었다.
『윤상원 일기』가 국보라면 『윤석동 일기』는 소중한 지방문화재이다. 언젠가 “80년 5월 광주, 그 후”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가 나타날 것이다. 그 연구자에게 『윤석동 일기』는 풍부하고 생생하며 완벽한 자료가 될 것이다.
일기 원본에 들어 있는 가족 이야기, 혹은 작자의 사생활을 나는 삭제하였다. 타인의 명예를 손상하는 표현들도 삭제하였다. 반복되는 날씨 이야기나 농사 메모도 삭제하였다. 정치학자나 역사학자에게 있어서 축약본 『윤석동일기』는 원본 일기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상학자나 농업경제학자가 『윤석동 일기』를 연구할 경우, 원본 일기를 찾아 확인하는 수고를 들여야 할 것이다. 일기 원본은 <한국학호남진흥원>에 수장되어 있다.
윤석동은 늘 병과 씨름하였고, 한 시도 죽음을 잊지 않았다. 2019년 6월 16일 타계하였다.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1980년 광주의 죽음과 부활을 노래한 김준태 시인은 고 윤석동(尹錫同, 1926-2019)의 영전에 추도시를 올렸다.
윤석동 선생님 영전에
님이여, 무진벌의 고운 님이여
아침노을에서 저녁노을까지
아흔셋 해 생사(生死)의 세월을 지키며 살다 가신 님이여
1980년 5월 27일 무등산(無等山)을 찢어댄 새벽 4시
배달겨레의 첫째아들 상원(祥源)을
생명과 평화 모두 ‘하나 됨의 나라’ 제단(祭壇)에
바치고... 이제 3만 년, 5천 년 우리들의 삶터로
새로이 돌아가시는 정든 땅 무진 벌 아버지여
님은 저 하늘과 땅 천지현황(天地玄黃)의
가르침대로 살고, 싸우고, 사랑하였습니다
아름다웠습니다. 아, 님이여 명목(暝目)하소서
무등산 위 별들이 그대를 데리려오고
있습니다 오월의 아버지여!
2019. 6. 17. 海南人 김준태 合掌
작가 소개
지은이 : 윤석동
1927년 태어났다. 1934년 임곡 심상소학교를 들어갔고, 송정 농업실습학교에 들어갔다. 윤석동은 부지런히 농사를 짓는 농부였다. 그러던 분이 1988년 연초부터 일기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어두운 죽음의 시대가 가고 있음을 직감한 것일까?“왔냐고 반가워를 하냐, 간다고 인사를 하냐, 이 자슥아” 1980년대 초 아들에 대한 생각은 한탄 그 자체였다. 윤석동이 아들의 죽음을 객관화하기까지 긴 세월이 흘렀다. 윤석동의 한탄이 “상원이는 죽어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쳤다.”는 역사적 인식으로 나아가는 데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1991년 6월 윤석동은 5.18 유족회의 회장으로 선출되었고, 유족회의 노력으로 1995년 11월 <5·18특별법>이 마침내 통과되었다. 다시 1997년 4월 <광주 5·18 기념일을 제정>되었다. 윤석동의 감회는 깊었을 것이다. 2002년 기쁜 소식이 왔다. <5.18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이 마침내 국회를 통과하였다. 윤석동이 흘린 땀과 눈물을 우리는 모르고 살았다. 청와대에서도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다는 사실에 윤석동은 적지 않은 위로를 받았다.
목차
윤석동의 일대기
편집자의 글
제1부 노태우 정부 시절(1988-1992) 일기
해제-1. 깨닫는 아버지
제2부 김영삼 정부 시절(1993-1997) 일기
해제-2. 아들의 벗들이 있어
제3부 김대중 정부 시절(1998-2002) 일기
해제-3. 실천하는 아버지
제4부 노무현 정부 시절(2003-2007) 일기
해제-4. 농사짓는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