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문학은 정말 ‘보편적’일까? 주디스 페털리의 『저항하는 독자』는 이 질문을 정면에서 제기하는 책이다. 1970년대 이후 페미니즘 문학 비평의 중요한 전환점을 만든 이 책은, 지금은 고전으로 자리 잡아 독서와 비평의 방식 자체를 재구성해 온 텍스트다. 페털리는 미국의 대표적인 소설들을 ‘다시’ 읽으며, 우리가 ‘보편적’이라고 믿어 온 감정과 시선이 사실은 얼마나 강하게 남성 중심적 구조에 의해 형성되어 왔는지를 철저하게 드러낸다. 페털리는 이 책에서 『무기여 잘 있거라』, 『위대한 개츠비』, 『보스턴 사람들』 등 미국 문학의 정전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들을 분석하면서, 문학을 단순한 재현의 장이 아니라 독자의 의식과 정체성을 만들어 내는 장치로 파악한다. 특히 여성 독자는 독서의 과정에서 타자(남성의 시선)에 동일시하도록 요구받으며, 그 결과 독서는 때때로 설명하기 어려운 분열과 무력감을 남기는 경험이 된다. 이렇게 이 책은 문학을 읽는 일이 여성에게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드러낸다.이 책이 제안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읽기 방식에 대한 적극적인 전환이다. 페털리는 독자에게 ‘동의하는 독자’의 자리에서 벗어나 ‘저항하는 독자’가 될 것을 요구한다. 텍스트가 자연스럽다고 제시하는 구도나 감정과 동일시하고, 그 시각에서 소설을 읽는 대신, 작품 안에 숨어 있는 전제와 권력 구조를 끄집어내는 읽기를 해야 한다는 것. 텍스트가 누구의 목소리로 말하며, 무엇을 말하지 않고 있는지, 또 어떤 위치를 독자에게 요구하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는 것이다.이 책의 한국어판에서는 1장에서 분석하는 네 편의 미국 단편소설―워싱턴 어빙의 「립 밴 윙클」, 셔우드 앤더슨의 「이유를 알고 싶다」, 너새니얼 호손의 「모반」, 윌리엄 포크너의 「에밀리에게 장미를」―을 옮긴이가 새롭게 번역해 부록으로 실었다. 한국에서 이 작품들의 번역본을 찾기 쉽지 않은 현실을 고려해, 독자들이 본문의 분석을 바로 대조해 읽을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다. 이 책의 논의를 따라가며 텍스트를 직접 확인하고 싶은 독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페미니스트 비평가의 첫번째 행동은 동의하는 독자가 아니라 저항하는 독자가 되는 것이어야 하며, 동의를 거부함으로써 우리 안에 이식된 남성의 정신을 몰아내는 과정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엑소시즘의 결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에이드리언 리치가 “과거를 돌아보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오래된 텍스트를 새로운 비평적 관점에서 들여다보는 행위”라고 설명한 다시-보기의 능력이다. 그리고 이러한 다시-보기의 결과, 책은 더 이상 전에 읽혔던 방식으로 읽힐 수 없을 것이며 따라서 우리를 무의식적으로 자신들의 기획으로 묶어 두었던 힘을 잃게 될 것이다. 여성들이 문학 작품을 우리 현실을 반영하는 작품으로 다시 써서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것이 되게 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작품들이 반영하는 현실을 정확하게 명명하는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문학 비평을 폐쇄적인 대화에서 적극적인 대화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무기여 잘 있거라』와 『위대한 개츠비』는 모두 사랑 이야기로, 두 작품은 함께 남성의 권력 유지에 낭만적 사랑의 신화가 다양하게 활용되는 방식을 보여 준다. 이에 더해 「립 밴 윙클」과 「모반」에 드러난 희생양 만들기의 기능이 자세히 설명된다. 사랑과 권력이라는 주제를 더욱 명징하게 연결함으로써 『위대한 개츠비』는 『무기여 잘 있거라』가 감추고 묻어 버리려 했던 적대감을 의식에 더욱 가까이 가져온다. 『보스턴 사람들』과 『미국의 꿈』은 전혀 예상치 못한, 어쩌면 가장 매혹적인 조합을 이룬다. 두 작품 모두 낭만적인 사랑의 모호함이 해소되고 권력의 문제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제임스의 소설은 남성의 권력, 여성의 무력함이라는 사회적 현실을 묘사하지만, 메일러의 소설은 그 현실을 뒤집는 사회적 신화, 즉 여성의 권력과 남성의 무력함을 만들어 냄으로써 이를 부정한다. 그러나 결국 메일러의 신화는 자신이 부정하는 현실을 유지하는 데 그 목적이 있을 뿐이다.
앤더슨의 이야기에는 페미니즘적 차원이 존재한다. 성장에 대한 소년의 저항은 남성으로 성장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으로 명확히 정의되며, 이러한 거부의 근원은 그가 속한 문화가 여성을 대하는 태도와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남성에게 가부장적 체제가 미치는 결과를 표현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여성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여성 독자는 여전히 순전히 남성과 그들의 딜레마만을 다루는 이야기, 여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하등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마주한다. 이러한 배제는 특히 앤더슨의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립 밴 윙클」을 읽는 여성의 상황과 유사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면 더욱더 불쾌해진다. 용납할 수 없는 정체성의 결여가 두 경우 모두에서 트라우마의 요인이 되며, 이름 없음, 자기혐오, 미결정상황[림보]이 그 결과로 나타난다. 그러나 분열된 자아가 남성일 때 이러한 현상은 예술과 의식의 소재로 더 쉽게 정당화된다. 다 알면서도 어빙의 ‘온화한’ 성에 대한 분석에는 미소를 짓고,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여성이 겪는 갈등을 상상이 아니더라도 그저 사소한 일로 치부하게 될 독자들은 앤더슨의 이야기가 담고 있는 ‘보편적인’ 비극에 예리한 통증을 느끼고 소년들이 남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에 깊이 공감하게 될 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주디스 페털리
뉴욕주립대학교(Albany/SUNY) 교수로 재직하며 미국 문학, 페미니즘 이론, 글쓰기 이론과 실제를 가르치고 연구했다. 『저항하는 독자』 외에 마저리 프라이스(Marjorie Pryse)와 함께 『자리를 벗어난 글쓰기: 지역성과 여성, 그리고 미국 문학문화』(Writing out of Place: Regionalism, Women, and American Literary Culture)를 썼고, 『지적 양식: 19세기 미국 여성들의 독본』(Provisions: A Reader from 19th-Century American Women)을 편집했다.현재는 주로 ‘인간이 된다는 것의 의미’로서의 정원과 식물 이야기를 쓰면서 ‘퍼레니얼 위즈덤’(Perennial Wisdom)을 운영하고 있고, 뉴스레터 ‘아웃 인 더 가든’(Out in the Garden)을 발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