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여행의 경로를 따라 쓴 시집이지만, 진짜 목적지는 지도 위의 도시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장소에 있다. 길 위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 그리고 나 자신을 함께 담아내며 여행이 어떻게 내면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호이안의 새벽, 빅토리아항의 야경, 포르투의 비와 리스본의 파두 등 낯선 풍경은 그리움과 회한, 설렘과 향수의 정서로 번역된다. 장소는 배경에 머물지 않고 기억과 감정을 불러내며, 여행이 바깥으로 나가는 동시에 자기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임을 드러낸다.
풍경을 소비하지 않고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을 포착하며, 감각의 밀도 높은 언어로 도시의 공기와 온기를 전한다. 낯선 장소를 지나며 결국 더 깊은 자신에게 도달하게 하는 여정으로, 여행이 남기는 가장 깊은 흔적을 조용히 그려낸 시집이다.
출판사 리뷰
단정 시인의 『샌안토니오, 그 여름』은 여행의 경로를 따라 쓴 시집이지만, 이 책의 진짜 목적지는 지도 위의 도시들이라기보다 그곳이 시인과 독자들의 마음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지점이다. 시인은 여행지를 눈으로만 훑고 지나가지 않는다. 그곳의 빛과 냄새, 골목과 바람, 음식과 음악을 몸으로 받아들이고, 그 감각이 마음속 기억과 만나 변해 가는 순간을 붙든다. 그래서 이 시집 속의 장소들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 정서의 발상지가 된다. 시인의 말에서 밝히듯 이 책에는 “길 위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그리고 나 자신”이 함께 담겨 있으며, 그 방향은 시집 전체에서 일관되게 이어진다.
이 시집의 가장 두드러진 미덕은 장소를 정서로 번역하는 능력이다. 호이안의 새벽은 그저 이국적인 풍경으로 머물지 않고 “가장 그리운 아침”으로 바뀌며, 빅토리아항의 야경은 곧장 서울의 골목과 정동 성당의 등불을 불러낸다. 포르투의 비, 리스본의 파두, 부다페스트의 강변, 샌안토니오의 여름 역시 눈앞의 풍경인 동시에 내면에서 되살아나는 그리움과 회한, 설렘과 향수의 다른 이름들이다. 낯선 도시가 낯선 채로 남지 않고, 어느 순간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정서의 자리로 다시 들어오는 것이다. 여행은 바깥으로 나가는 일이면서 동시에 자기 안으로 깊이 들어가는 일이 된다는 점에서, 이 시집은 한 차원 진화한 여행시의 한 경지를 이루고 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점은 이 시집 안의 시들이 풍경만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시선은 늘 사람에게 가 닿아 있다. 꽝간을 멘 여인, 노란 조각의 과일을 건네는 여자와 등에 업힌 아이, 뜨거운 철판 앞의 남자, 하카다역의 여승무원, 노부부, 택시 곁에 서 있는 사내 그리고 샌안토니오의 엄마까지, 시인은 관광객의 시선으로 명소를 소비하지 않고, 그 장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몸짓과 표정, 손끝과 목소리를 포착한다. 한 도시의 진짜 모습은 건축물보다 사람의 태도와 생활의 리듬 속에 있다는 것을 단정 시인은 잘 알고 있다. “풍경이 사람을 바라본다/풍경의 시점으로/풍경의 눈으로”라는 구절은 이 시집 전체를 설명하는 문장처럼 읽힌다. 여기서 풍경은 단순한 배경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건너며 살아 움직이는 시선으로 변한다.
또 하나 인상적인 점은 감각의 밀도다. 이 시집에는 향신료 냄새, 커피 향, 비의 온도, 빵 냄새, 레몬그라스와 고추 냄새, 라임과 와인과 살사의 빛이 끊임없이 흐른다. 시인은 장소를 설명하는 대신 맛과 냄새와 색채를 불러내어 독자를 그 자리로 데려간다. 그 감각들은 곧 기억을 흔들고, 기억은 다시 정서를 일으킨다. 그래서 한 편 한 편의 시를 읽다 보면 우리는 도시를 이해한다기보다 먼저 그 도시에 젖게 된다.
『샌안토니오, 그 여름』은 여행을 기록한 시집이면서, 삶이 낯선 곳에서 어떻게 자신을 다시 발견하는지를 보여주는 시집이다. 멀리 떠났기에 더 선명해지는 고향의 빛, 타인의 일상에서 문득 발견하는 내 삶의 그림자, 스쳐 지나간 자리에서 오래 남는 사람의 온기까지, 이 시집은 여행이 남기는 가장 깊은 흔적을 조용하게 흐르는 언어로 빚어낸다. 여행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새로운 감각의 지도처럼, 일상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싶은 독자에게는 마음을 데리고 떠나는 작은 여정처럼 다가올 것이다. 낯선 장소를 지나며 결국 더 깊은 자기 자신에게 도착하게 하는 시집, 『샌안토니오, 그 여름』은 그런 드문 여행시집이다.
종이비행기처럼 접힌 시간 위로
붕 떠오른다
일상은 천천히 물러간다
-「한 페이지의 시간」 부분
물안개가 무릎까지 차오른 강가
노란 벽을 등진 소원배들이
강과 강변을 촘촘히 메운다
-「아침의 투본강」 부분
달빛이 길 끝에 매달려
닿지 못한 아침이
문득
가장 그리운 아침이 된다
-「노란 랜턴 핀 호이안 길」 부분
작가 소개
지은이 : 단정
독일 파라셀수스 크랑켄하우스 3년 근무서울시 공무원 33년 근무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 수료『문학의 강』 수필 등단 (2017년)시집 『샌안토니오, 그 여름』 (2026년)
목차
1부 붉은 꽃들이 빚은 둥근 바람 속으로
한 페이지의 시간/ 이륙/ 정원의 아침/ 아침의 투본강/ 노란 랜턴 핀 호이안 길/
사원의 시원/ 나는 다만 지나가는 사람/ 안개를 다녀간 흔적/ 길 위에서 암스테르담/
피카/ 뜨거운 태양과 아이스 커피/ 알프스 호수의 하루/ 휘핑크림 아래의 시간/
오늘 아침의 인사는 노란색입니다/ 오렌지빛 숙소/ 빅토리아항에서
2부 넝쿨장미는 여전히 구름의 흐름을 따르고
쏨탐/ 노을 타르트/ 비행기 아래 팟타이/ 코쿤카/ 플루메리아 향 속에서/ 5.8%의 밤/
하카다의 그림자/ 노을의 잔/ 잔 속 라임처럼/ 팔천 킬로미터의 집밥/ 식탁 위 지중해/
돈 조반니의 도시에서/ 콜로안의 오후를 걷다/ 지우펀 홍등 아래서/
바다의 노래, 리스본의 눈물/ 스펀의 하늘
3부 누군가 아직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처럼
붉은 성/ 라임나무 아래 오스틴의 밤/ 유후인행 기차 안에서/ 라임을 여는 봄/
잠들지 않는 마카오의 밤/ 교차로의 나비/ 모히토의 초록/ 부다페스트 가는 길/
택시 창밖처럼/ 강변의 신발들/ 기억은 소리 없이 달린다/ 포르투의 비/
국경을 넘지 못한 꽃/ 와이탄에 비가 내리면/ 비 오는 람블라스/
비의 이중주/ 푸른 도나우 저녁에/ 베레모와 덧니
4부 하나둘 사라지는 붉은 지붕들
마티니의 밤/ 샌안토니오, 그 여름/ 레몬그라스와 고추 냄새/ 잠깐의 귀향/
물꽃 토네이도/ 비파 줄을 뜯는 이방인/ 녹지 않는 기도/ 누가 내 이름을 불러 주었으면/
환승/ 정지된 풍경 속에서/ 저녁의 기도/ 적도제의 밤/ 스웨덴의 햇살/ 리스본의 시간/
토카이/ 료칸의 밤/ 잔 속으로 내리다
짧은 여행서
호이안의 밤
체스키크룸로프의 아이러니
빈, 종소리가 멈춘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