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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산로드 7000km
의열단 100년, 약산 김원봉 추적기
필로소픽 | 부모님 | 2019.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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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약산 김원봉. 백범 김구보다 현상금이 컸던 유일한 독립운동가. 일제가 두려워했던 의열단 의백 김원봉이 연일 화제다. 의열단 100주년을 맞이해 소설과 드라마로 재조명됐지만, 그의 이름만 유명해졌을 뿐, 그가 누구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영화 <암살>, <밀정>과 드라마 <이몽>처럼 단편적인 모습 말고 우리는 약산 김원봉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리고 왜 우리는 지금 약산 김원봉을 알아야 할까?

《약산로드 7000km》는 독립운동 역사기행 전문가인 《임정로드 4000km》 김종훈 기자가 서울을 시작으로 밀양·지린·베이징·상하이·난징·우한·광저우·치장·충칭·평양까지 약산과 의열단의 발자취를 직접 발로 걸으며 생생한 현장으로 안내하는 국내 최초 김원봉 역사기행 가이드이다.

김원봉과 윤세주 등이 나고 자란 밀양에서부터 의열단이 탄생한 ‘지린 광화로 57호’, 단재 신채호를 만나 의열단의 정신을 완성한 ‘베이징 초두호동’, 조선의용대를 창립한 우한 등 한국과 중국 곳곳에 남아있는 약산의 흔적을 따라가면 우리가 몰랐던 또 한 명의 ‘코리안 어벤져스’를 마주하는 가슴 뜨거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출판사 리뷰

김원봉의 발걸음을 따라서 떠난 최초의 역사기행 가이드, 약산로드

2019년 의열단 100주년을 맞아 약산 김원봉과 의열단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하다. 영화, 소설, 평전 등 김원봉을 찾는 이도 많아졌다. 하지만 김원봉의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현장’에서 추적한 책은 없었다.
올해 초,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국내 최초 대한민국 임시정부 여행 가이드북 《임정로드 4000km》를 펴낸 바 있는 오마이뉴스 김종훈 기자가 이번에는 김원봉의 발자취를 추적한 《약산로드 7000km》로 돌아왔다.
《약산로드 7000km》는 《임정로드 4000km》가 그랬듯 약산 김원봉과 의열단, 조선의용대, 광복군 등 27년간 활동했던 약산의 현장을 직접 발로 누비며 만든 책이다. 판에 박힌 역사책이 아닌, 청년 기자의 예리한 시선으로 김원봉의 생애를 재조명한다. 기자 특유의 날카로운 분석과 현장감 있는 문장은 한 편의 르포문학을 읽는 듯 생생함을 더해준다.

캠퍼스의 낭만 가득한 베이징대 뒤로 이런 역사가…

한국인 유학생과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중국의 수도 베이징. 청춘들이 캠퍼스의 낭만을 만끽하고 있는 베이징대 뒤로 낡고 허름한 골목 하나가 나타난다. 바로 그곳에서 약산 김원봉과 단재 신채호, 두 독립 영웅이 만났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1919년 의열단 창립 후, 줄기찬 의열 투쟁을 전개했지만 여전히 독립운동 진영에서는 의열단의 투쟁을 ‘테러’라고 비난하는 시각도 존재했다. 스물한 살 청년 김원봉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들의 행동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설득력 있는 이론이 필요하다고!
1922년 겨울, 김원봉은 의열단의 마지막 퍼즐을 완성해줄 인물을 찾아 떠난다. 그는 바로 당대 최고의 문필가이자 역사학자였던 ‘단재 신채호’였다. 힘 없는 외교로는 독립을 쟁취할 수 없다고 굳게 믿은 두 영웅은 류자명의 소개로 첫 만남부터 의기투합해 마침내 ‘강도 일본’으로 시작하는 6,800자의 ‘조선혁명선언(의열단 선언)’을 완성했다.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 무기이다. 우리는 민중 속에 가서 민중과 손을 잡고 끊임없는 폭력-암살·파괴·폭동으로써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체 제도를 개조하여, 인류로써 인류를 압박치 못하며, 사회로써 사회를 수탈하지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

베일에 가려졌던 의열단원의 흔적을 세상에 드러내다

앉은 자리에서 2시간 이상 보낸 적이 없었을 만큼 신출귀몰했던 김원봉답게 베이징 곳곳에서는 그와 의열단원들이 활동했다는 기록만 남아있을 뿐, 정확한 장소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저자 김종훈 기자는 얼마 안 되는 기록에서 단서를 찾고, 직접 현장을 뒤져가며 현지 전문가에게 수소문하여 얻은 정보들을 파헤쳐 베일에 가려진 김원봉과 의열단원의 활동을 추적했다. 마침내 의열단 베이징 본부가 있던 ‘외교부대가’에 도착한 저자는 마치 금방이라도 양복을 입은 의열단원이 나와서 인사를 건넬 것만 같은 환상마저 들었다고 고백한다. 이렇게 《약산로드 7000km》는 100년 전 독립운동의 현장으로 독자를 데리고 간다.
때로는 폭탄을 제조하고 일제를 처단하는 의열단원이, 때로는 한 손엔 총을, 한 손엔 책을 든 조선의용대원이, 때로는 대일선전포고를 선언하는 감격스런 한국광복군이 되어 약산과 함께 우리 독립운동사의 중요한 순간에 서 있는 황홀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독립기념관조차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약산의 흔적을 《약산로드 7000km》에서 최초로 만날 수 있다.

청년 김원봉과 동지들을 찾아

김원봉이 의열단과 조선의용대를 이끌며 독립운동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은 목숨도 아끼지 않고 그를 믿고 따른 동지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약산로드 7000km》의 여정은 김원봉 한 사람 뿐만 아니라 그의 동지들에게도 초점을 맞춘다.
김원봉의 고향 친구 ‘윤세주’, 저항시인 ‘이육사’, 의열단의 정신적 지주였던 ‘신채호’, 마지막 의열단원 ‘김시현’ 그리고 동지이자 연인이었던 ‘박차정’ 등 우리가 몰랐던 그러나 꼭 알아야만 하는 소중한 독립운동가와 만나는 가슴 벅찬 경험을 하게 된다. 실감나는 역사의 현장과 가슴 깊이 느껴지는 독립운동의 이야기를 함께 만나는 책.

“약산로드를 진행하며 끊임없이 떠올렸던 감정이 박차정 지사의 묘 앞에서도 이어졌다. ‘왜 약산과 관련된 흔적들은 이토록 초라하게만 남아있을까?’ 실제로 박차정 지사 역시 약산의 배우자라는 이유만으로 공훈을 인정받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1995년에야 비로소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으니, 지사가 1944년 중국 충칭에서 사망한 것을 고려하면 50년도 더 지나서의 일이다.”

“지린시 광화로 57호, 1919년 11월 10일 의열단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 창단 후 십 수 년 동안 일제에 공포를 줬지만,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중요한 의열단체지만, 역시나 아무 것도 없다. 단장(의백)이 약산 김원봉이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그들의 위대한 걸음을 이렇게라도 격하시키고 싶었던 것일까? 약산이라는 걸음이 사라진 반 토막 난 독립운동사가 다시 한 번 현실처럼 느껴져 애석하고 아쉬울 따름이다.”

“문제는 약산과 의열단이 활동했던 정확한 위치를 특정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베이징 활동 당시 약산이 절대로 한 장소에서 이틀 이상 머물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상하이와 베이징 모두 의열단이 중심을 잡고 활동했던 본부는 분명히 존재했다. 과연 의열단은 어디서 모였을까? 현장을 뒤지고, 이리저리 수소문한 끝에 마침내 베이징에서 십 수 년 동안 머물며 독립운동사를 연구한 한 향토학자가 중심이 되서 베이징 의열단 본부(통신소)의 대략적인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현재 베이징 협화의원 건너편에 있는 ‘외교부대가(外交部大街)’라는 거리다. 약 400m정도 되는 길, 이곳 어디선가 약산과 의열단이 의거를 준비하고 실행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종훈
<오마이뉴스> 기자. 뒤늦게 약산 김원봉의 진실을 알게 돼 깊이 빠져들었다. 이후로 임시정부를 연구하며 약산 김원봉도 함께 살폈다. 지난해 로드다큐 <임정>을 제작하고 <임정로드 4000km>를 집필했다. 과정에서 약산 김원봉이 걸었던 그 길도 함께 추적했다. 2019년 의열단 창립 100주년을 맞아 대내외로 약산을 더 깊이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이는 곧 직장인으로서 모든 휴가와 자금을 쏟아부어 약산 김원봉을 추적한다는 의미, 약산의 고향 밀양을 시작으로 지린과 베이징, 우한, 상하이, 충칭, 광저우 등지에서 약산의 걸음을 자세히 살폈다. 지금은 서울 한복판을 걸으면서도 약산을 생각하는 정도다. <약산로드 7000km>가 나올 수 있었던 이유다. 약산을 깊이 새기기 전까지는 평범했다. 초여름에 태어나,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4년 동안 장교로 군 생활을 했다. 이후 30개월 동안 세계를 돌며 20대를 보냈다. 아프리카 여러 나라와 필리핀, 호주 등에서 고생을 했다. 서른이 다 돼 한국에 돌아와 비정규직 영어 강사로 일하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와 인턴기자를 거쳐, 미디어협동조합 <국민TV>에서 방송기자로 활약했다. 이후엔 다시 고향 같은 <오마이뉴스>로 돌아와 현재는 사회부 취재 기자로 일한다. 노동이 주 파트이지만 요령껏 독립운동사와 친일파 추적을 병행한다. 앞으로의 행보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귀한 사람들과 함께 약산 김원봉과 의열단원 윤세주, 김시현, 김익상, 김상옥 등 지사들의 이야기를 계속 기록하고 싶다.

  목차

추천사
프롤로그
약산로드, 이렇게 준비하자
약산로드 추천코스


1부 서울 의열단 100년, 친일의 그림자는 여전하다
01 국립서울현충원 항일과 친일이 함께 잠든 곳
02 수도청과 중부경찰서 독립운동의 거두가 모욕당한 치욕의 장소
“나경원 선 넘었다……. 친일경찰 노덕술과 뭐가 다르냐”

2부 밀양 의열의 도시, 그러나 아직은 고개를 들 수 없다
01 약산 생가 터에 세워진 의열기념관
02 일장기를 똥통에 버리고 의열 정신을 키우다 - 밀양보통학교와 동화중학교
03 의열투쟁을 기록하다 - 밀양 독립기념관
04 떼 하나 서지 않는 땅 - 독립운동가 박차정 여사의 묘
“먹고 살려고……. 1급 친일파 기념관 짓겠다는 밀양시”

3부 지린 1919년 11월 10일 의열단이 탄생하다
01 일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의열단이건만 - 의열단 창립지
“의열단 창단멤버, 10명인가, 13명인가?”
02 만보산 사건과 조선일보 김이삼의 죽음 만보산 사건 발생지
03 김일성이 지린에 남긴 흔적들 - 육문중학과 북산공원
“친일파 백선엽이 전쟁영웅? 100세 생존 독립운동가의 일갈”
04 남북에서 모두 존경받는 손정도가 지린에 남긴 흔적들 - 손정도 목사의 교회 터

4부 베이징 우리는 기억한다. 그들이 걸었던 그곳을
01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곳, 베이징 의열단 본부(통신소) - 외교부대가
“상남자 김익상이 그립다, 조선총독부 폭탄 의거 주인공”
02 베이징에서 만난 의열단원 김산의 흔적 - 협화병원과 자금성 인근 김산 거주지
03 약산, 단재를 찾다 - 초두호동 거주지
“베이징에 남은 단재의 흔적들”
04 독립운동가 이육사의 마지막 기록 - 베이징 동창후통 28호
05 한 동네에 살던 지사와 밀정 - 이회영과 김달하
06 약산은 왜 ‘레닌’에 물들었을까 레닌주의정치학교 터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한 사람 이태준, 약산에게 헝가리인 마자알을 보내다.”

5부 상하이 의열단이 와이탄에 남긴 희망과 좌절
01 중국에서 야경이 가장 아름다운 곳
“<조선혁명선언>이 상하이에서 탄생한 이유, 우리가 잘 몰랐던 의열단원 류자명의 노고”

6부 난징 김시현, 윤세주, 정율성 그리고 이육사, 우리가 잘 몰랐던 의열단원들
01 다시 오른 천녕사, 그곳을 찾는 사람들 - ‘일본의 개가 되느니 목숨을 걸겠다’
“우리에게 더 알려져야 할 의열단원 김시현 그리고 김지섭”
02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금릉대학’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
03 김원봉은 어디에 살았을까? ‘호가화원’ 거주지

7부 광저우 화합과 비극의 장소, 그럼에도 약산은 나아갔다
01 황포군관학교에 남은 약산의 진짜 기록
02 조선인 가이드를 울게 한 곳, 기의열사능원

8부 우한·구이린 중국이 기억하는 우리의 군대, 조선의용대
01 조선의용대 창립지 그리고 기념축하장소
“조선의용대 성립 경축행사, 왜 10월 13일에 진행했나?”
02 자주독립을 위해서, 하나로 뜻을 모으다, 조선민족전선연맹과 최창익의 조선청년전위동맹
03 팔로군 기념관에서 만난 약산과 조선의용대
04 우한 국민정부 청사와 적경리 위안소
“우한 신해혁명기념관 그리고 황학루와 백운정, 악비동상”
05 구이린, 우한에서 물러난 약산과 조선의용대
“치장에서 쏘아올린 약산과 백범의 공개통신”

9부 충칭 해방의 감동, 일장춘몽은 아무도 상상하지 않았다
01 박차정 지사 순국지 (약산 김원봉 충칭 거주지) / 고난과 고난의 연속
02 대한민국 임시정부 연화지 청사 / 약산에 관한 기록, 사리지고 만들어지다
03 복원된 광복군 사령부, 결코 웃지 못했던 애증의 장소
“김약산, 고국으로 돌아오다”

10부 평양 약산이 죽는 순간까지 놓지 않았던 직책 하나
01 월북 이후의 약산, 그리고 현재
"독립군 살육 백선엽이 국군 아버지? 현충원 안장 안 돼"

에필로그
1년간의 추적: 감사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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