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우리는 조금의 상처도 피하는 것을
건강한 삶이라 착각하고 있다”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단속사회》 엄기호 강력추천
98년생 사회학자 이승연이 탐구한
손익계산이 되어버린 인간관계, 연결 불가능성의 시대‘나르시시스트 손절법’, ‘회피형 친구 손절한 썰’ 등의 게시물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득하고, 유튜브와 릴스에는 심리학적·정신의학적 용어를 동원해 ‘유해한’ 사람을 구분하는 법을 알려주는 동영상이 인기를 끈다. 이렇듯 ‘손절’이라는 유행어는 인간관계를 단절하라는 조언이 넘치는 우리 시대의 풍경을 보여준다. 그런데 한편으로 외로움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 문제로 확장되어, 2024년 실시된 한 설문조사에서는 19~59세 한국 성인 응답자 57%가 평소 일상생활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89%가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사회에 많다는 데 공감했을 정도이다.
《손절사회》는 손익계산이 되어버린 오늘날의 인간관계에 대한, 심리학에서 대중문화에 이르는 전방위적 탐구의 결과이다. 98년생 사회학 연구자 이승연은 20대 여성의 우울증 치료 경험에 관한 연구를 하던 중 “청년 세대를 포함한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외로움을 호소하는 동시에 자발적으로 단절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떠올렸고, ‘손절’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우리 시대의 인간관계를 사회문화적으로 탐구하고자 하였다.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수영은 “신자유주의가 관계를 손익계산서로 전락시키는 현상을 이토록 예리하게 파고든 책이 있을까”라고 이야기하며 책의 문제의식을 극찬했다.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콘텐츠스쿨 교수 엄기호 또한 “동시대의 실상은 ‘외로움’이 아니라 ‘손절’에 있다는 핵심을 찌르는 놀라운 책”이라는 설명과 함께 “이 책이야말로 바로 지금의 책”이라는 추천의 말을 전했다. 인간관계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그에 담긴 각자도생의 구조를 날카롭게 해부한 《손절사회》는 연결 불가능성의 시대가 된 우리의 오늘날을 비판적으로 되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권유하는 사회의 명령,
모든 인간관계에서 자유로운 노동자가 되어라유튜브에서 ‘인간관계’라는 말을 검색하면, 인기 동영상들의 썸네일은 대개 심리학 전문가의 사진 옆에 이런 제목들을 띄운다. ‘정신과 의사가 알려주는 손절해야 할 사람 유형 TOP3’, ‘이런 행동 하는 사람은 만나지 마세요’, ‘엮이면 안 되는 독이 되는 사람 유형 1위’. 이처럼 저자는 타인을 감정적 득실에 따라 평가하며, 손절이라는 행위를 통해 관계를 최적화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적 과제가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상대는 나의 정신 건강을 해치는 유해한 존재이며, 심리적으로 이득이 되지 않는 관계는 과감히 끊어버리는 것이 지혜로운 행동이다. 관계는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도구일 때만 가치를 갖는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인간관계를 잠재적 위협으로 보는 현상은 단지 온라인 콘텐츠의 세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2024년 ‘사단법인 오늘은’에서 발표한 청년의 인간관계에 관한 조사는 적지 않은 청년들이 관계에서의 감정적 피해를 회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 조사에서는 관계를 맺을 때 상처받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명제에 대해 자그마치 68%가 ‘그렇다’ 또는 ‘매우 그렇다’로 동의를 표했고, 9%만이 ‘그렇지 않다’나 ‘전혀 그렇지 않다’로 답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우리가 관계에서 ‘내 정신 건강에 대한 방어’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취급하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현대 사회가 신자유주의적 재편과 함께 점점 더 관계 맺기를 위한 여유를 허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변해왔다고 지적한다. 비정규직, 파견직, 프리랜서, 긱(gig) 노동(배달이나 대리운전 등의 초단기 노동)을 비롯한 노동의 유연화 속에서, 상당수의 노동자는 미래를 알 수 없는 불안정한 노동을 지속한다. 불확실성이 만연한 사회의 특징은 우리 자신이 끊임없이 가치를 높여야 할 상품이 된다는 것이다. 자기 계발을 멈추지 못하고, 나의 값을 높게 불러줄 곳을 찾아 이곳저곳을 헤매야 하는 상황에서 상처와 갈등을 당연하게 여기는, 전통적인 의미의 인간관계는 장애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저자는 신자유주의 체제로의 변화가 일상의 모든 측면을 경제적 관점에서 이해하게 만드는 세계관의 변화이기도 했다는 걸 보여준다.
건강, 행복, 진정성이라는 가치는
어떻게 손절사회와 좋은 짝을 이루는가?그런데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자기 계발이 만연한 이 사회는 정신 건강, 진정성, 행복 같은 가치를 어느 때보다 강조하는 온정적 사회이기도 하다. 수많은 심리학 전문가, 인간관계 멘토가 TV와 유튜브, SNS에 등장해 자기 돌봄을 실행하기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기를, 진정한 나를 회복하기를 권한다. PTSD와 HSP는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용어가 되었고, “상담을 받으라”는 말은 타인에게 건네는 가장 따뜻한 조언이 되었다. 마치 상담사가 치료요법(therapy)을 시행하듯이, 심리학과 정신의학의 개념을 사용해 내면을 성찰함으로써 정신적 건강을 달성하는 것이 중요한 문화적 과제가 된 것이다.
사회학자들이 ‘치료요법 문화(therapy culture)’라고 부르는 이 문화는 언뜻 냉혹한 경쟁 논리와 반대되는 진보적인 가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든 결과는 너 혼자만의 책임이다’라는 각자도생 사회의 메시지와 좋은 짝을 이룬다. 좋은 기분을 유지하는 것이 일종의 도덕이 된 사회에서, 타인의 고통을 듣는 행위는 나를 해치는 행위이자 불필요한 감정적 투자가 되어버린다. 미디어에 등장하는 인간관계 전문가들의 조언은 대체로 비슷하다. 먼저 타인의 일상적 행동과 말투 하나하나에서 ‘유해함’의 증거를 찾는다. 때로는 별다른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유해함의 증거가 되기도 한다. 타인의 평범한 행동은 이제 나를 ‘감정 쓰레기통’ 삼는 행위가 되고, 그는 갑작스러운 단절, 즉 손절의 대상이 된다. 진지하게 문제를 논의하는 대신 갑작스럽게 관계를 끊는 것이 무례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는 오히려 지혜로운 행동으로 칭찬받는다. 나는 나의 심리적 건강을 지키고, 진정한 나를 회복하는 것만 신경 써야 하기 때문이다.
일상의 모든 문제를 병리와 치유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치료요법적 감수성은 타인의 고통, 그리고 타인으로 인한 고통 모두를 피하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만든다. 그런데 저자는 고통을 단지 유해한 것으로만 이해할 이유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고통은 삶과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며, 변화의 계기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경청하는 건 분명 괴로운 일이지만 그 괴로움 때문에 우리는 연대하려는 마음을 갖게 되며, 혼자만의 익숙한 세계에서 벗어나 낯선 타인이 있는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게 된다. 슬픔과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없다면 세상의 어두운 면모에 주목할 계기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치료요법 문화는 일상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을 그저 ‘스트레스’ ‘트라우마’ ‘상처’ 같은 어휘로 이해하게 만듦으로써, 갈등이나 고통을 성장의 계기가 아닌 정신 건강에 해로운 요소로 평면화하는 관점을 확산시킨다.
우리는 왜 MBTI에 열광하는가?
관계의 필터를 통해 최적의 관계 만들기인간관계가 성적이나 성과처럼 관리하고 최적화해야 할 문제가 될 때, 관계의 ‘정답’을 찾고자 하는 경향은 강화된다. 특히 MBTI 같은 심리학적 분류들이 정답을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에게 감정적 투자를 해버리는 손해를 막기 위해 MBTI를 사용한다. 여기서 인간은 쉽게 요약할 수 있는 몇 줄의 프로필이 되어버린다. SNS와 소개팅 어플의 프로필에 MBTI를 표시하는 현상에서 드러나듯 이제 인간과 인간의 만남은 프로필과 프로필의 만남, 특히 심리적 프로필의 만남처럼 여겨진다. 여기에는 인간의 심리적 특징은 고정적 실체이며,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이 부여하는 명칭이야말로 개인의 진정한 정체성이라는 전제가 담겨 있다. 실제로 ADHD, 우울증, HSP 같은 용어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는 청년과 청소년, 그리고 SNS 계정이 증가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심리학적 명칭을 개인의 고정된 정체성으로 삼을 때, 오히려 개인이 겪고 있는 문제가 심화되기도 한다. 저자는 심리학적 명칭처럼 한 가지의 자기 개념에 집착하는 것은 오히려 인간을 고통에 취약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나는 내향적이다’, ‘나는 계획적이다’, ‘나는 예민하다’, ‘나는 우울하다’ 같은 자기 개념이 확고해지면, 그 개념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사람들은 자기 개념의 변화를 유도하는 상황에 저항하게 된다. 이는 다양한 갈등과 고통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여러 면모를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들고, “나는 MBTI가 OOOO라서” 같은 평면적인 설명으로만 문제 상황에 대처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심리적 프로필에 대한 과도한 맹신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우리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독백적’으로만 이해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타고난 심리적 기질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의 정체성이 타인과 사회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실체라고 볼 순 없다.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가 속한 사회문화적 환경 아래에서, 무수히 많은 타인들과 소통하며 ‘대화적’으로 형성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개인의 정체성을 독백적으로만 이해하는 문화에서, 타인은 나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통로가 아니라 진정한 나를 오염시키는 존재로만 이해되기 쉽다.
AI와의 사랑, 사주팔자에 대한 집착,
무해하고 통제 가능한 세계를 갈망하다저자는 타인을 나의 정신 건강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보는 흐름이 어떻게 사주팔자의 유행이나 AI에 대한 과도한 의지 같은 현상으로 이어졌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젊은 세대에게 사주와 타로는 일상 속 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사주 카페와 타로 카페는 어디서든 쉽게 발견할 수 있으며, ‘포스텔러’, ‘점신’, ‘헬로우봇’ 같은 운세 앱도 인기를 끌고 있다. 한 운세 앱은 누적 가입자가 900만 명을 넘어섰을 정도이다. 저자는 이처럼 사람들이 사주, 타로 같은 주술적 힘에 기대는 모습이 MBTI 같은 심리적 프로필에 기대는 모습과 닮아 있다고 이야기한다. 불필요한 실패와 감정적 투자를 막기 위한 최적화된 선택지, 권위가 부여된 선택지, 실패 없는 선택지를 위한 도구 중 하나가 바로 주술적 세계관인 것이다. 무엇보다 주술적 세계관은 사회적 환경과 맥락으로 인생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패배자의 변명처럼 여기는 사회에서 누구에게도 비난받지 않을 수 있는 외적 설명을 제공한다.
AI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현상 역시 인간관계에 대한 인식 변화와 관련이 있다. 이제 AI는 사소한 일에서도 가장 현명한 정답을 알려주는 친구, 24시간 대가 없는 상담을 제공하는 상담사, 심지어 사주를 통해 미래를 알려주는 무당 노릇까지 한다. AI는 현실의 인간과 달리 어떤 갈등이나 반대도 보여주지 않는 무해한 존재이고, 상호성이 아예 없는 것에서 나아가 당신의 생각을 그대로 투영하는 거울 같은 존재이다. 당신에게 무해한 사람을 만나라고 조언하면서, 인간관계의 전제인 상호성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 치료요법적 세계관에 딱 맞는 기술이 바로 AI인 것이다. 저자는 심리적 안전지대에 머무르며 자신의 내면에만 침잠하고, 상대를 통해 자신을 반추해볼 기회 없이 ‘객관적 해답’을 얻고 있다는 환상에 빠져들 때 우리가 어떤 미래를 마주하게 될지 질문을 던진다.
말하려는 입은 많으나 들으려는 귀는 어디에도 없는 사회, 저자는 지금 우리가 그러한 외로움의 디스토피아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치료요법 문화에서 권유하는 ‘손절’이 결코 해방과 치유의 언어가 될 수 없는 이유다. 치유는 개인이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에 대한 성찰과 낯선 타인과의 유대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개개인이 고통을 호소하는 것을 넘어, 진정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사회적 연결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손절’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현상이 보여주듯 요즘은 인간관계를 단절하라는 조언이 흔한 시대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보면 이토록 외로운 사람이 많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이 겉으로 드러내지만 않을 뿐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는 중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 특히 청년들이 깊은 외로움을 겪는 이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_〈서론: 가장 외로운 시대, 가장 외로운 세대〉 중에서
유튜브에서 일관되게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동영상들은 대개 심리학적·정신의학적 용어를 동원해 인간 행동을 평가하기 위한 일반화된 원리를 설명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마치 식당의 위생을 점검하는 백종원처럼, 행동과 언어 하나하나에 확대경을 들이밀어 낱낱이 평가하는 이러한 행위의 목적은 정신 건강에 ‘유해한’ 사람을 구분한 다음, 인간관계를 끊어내는 ‘손절’ 행위를 통해 이들에게서 받을지도 모를 피해를 예방하는 것이다. _〈1장 인간관계 전문가의 시대〉 중에서